중국의 제국성(帝國性) 상실과 일국양제의 종언

시진핑의 중국몽(中国梦)은 흥국몽(兴国梦)과 강군몽(强国梦) 그리고 통일몽(统一梦)을 포함하고 있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의‘100년 치욕’을 청산하는 역사적 상징으로 홍콩 반환과 타이완과의 통합이 통일몽의 최종 목표이다. 1997년과 1999년 각각 홍콩과 마카오가 중국으로 반환됨에 따라 이제 타이완은 중국 통일몽의 마지막 퍼즐이 되었다. 시진핑은 이 마지막 퍼즐을 맞추고 싶어한다. 그렇게 될 경우 마오쩌둥의 혁명과 건국(站起来),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발전(富起来)에 버금가는 시진핑의 명실상부한 업적으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强起来)의 상징이 될 것이다. 중국공산당‘핵심’이자‘인민 영수’칭호를 부여받았고, 무리하게 당 관행을 깨고 3연임을 하는 시진핑에게‘신시대’의 상징이자 마오와 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에 오르는 데 손색이 없어 보이는 성과일 것이다. 시진핑이 조급함과 위압을 드러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9년 1월에 시진핑은 타이완을 일국양제(一国两制) 방식으로 통일하겠다는 견해를 밝혔으나,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반국가분열법’에 의거하여 타이완에 대한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덩샤오핑이 1978년 중국공산당 11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제기한 것으로 알려진 일국양제는 중국에게는 익숙한 제도였다. 일국양제는 주권과 통치권의 분리를 통한 통일이라는 전통 시기‘제국 중국’의 보편적인 통합 모델인 일국다제(一国多制) 전통에 기반을 둔 중화제국의 유산이자, 궁극적으로는 타이완과의 대일통(大一統)을 위한 현대판 기미(羁縻) 제도였다. 제국은 팽창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폭력이 수반되며, 동시에 민족적·지역적·문화적 다양성과 이질성 또한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제국은 광역의 영토를 지배하는 데 따른‘억압’과 함께‘관용’과‘자율성’이라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측면의 중요한 원리로 구성된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특성의 통치체제이다.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제국은 제국주의와 혼용되면서 강압과 약탈의 부정적 질서의 대상이 되었으나, 탈냉전과 함께 제국에 대한 도덕적 복권과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외로 팽창하는 과정에서 가치와 체제의 동일화와 경제적 착취 그리고 정치ㆍ군사적 지배로 강압하는 침략적 국민국가인 제국주의와 구분되어야 할 제국의 중요한 통치원리는 다양성과 자율성에 대한 존중이다.
중국에서 이념적으로 대일통 관념이 출현하고 물리적으로 중앙집권적 전제체제가 확립된 것은 천하(天下)체계에서 광역국가인 제국체제로 전환되고 제국이 팽창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그 이유는 다원성과 다양성을 내포하고 있는 제국의 공동체적 결속력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기 떄문이다. 다른 한편 제국 통치는 현실적인 문제를 수반했다. 제국은 확장뿐 아니라 유지를 위해서도 적지 않은 비용을 치러야 했다. 과도한 제국의 유지비용은 결국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제국은 대일통을 전제로 집권과 분권적·자치적 통치의 효율적인 최적 조합을 찾아야 했다. 그러한 현실적 고민의 결과가 대일통에 의한 하나의 국가체제 아래에서 관련 구성단위들이 공존할 수 있는 일국다제와 같은 혼합 제도의 도입이다. 전통 시기 왕실과 공신에게 분봉해 관리되는 제후국, 황제의 통치력이 투사되는 범위에 따라 황제가 임명한 관리들에 의한 직접 통치가 실현되는 군현, 제국 내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기층 및 이민족 지역에 대한 자치 제도, 그리고 외번(外蕃) 지역에 대한 조공-책봉제도 등은 제국과 제국의 주변 지역이나 민족을 관리하기 위한 다층적 지배구조로서의 일국다제의 실천적 제도들이다.
  • 존 리 신임 홍콩 행정장관의 선서를 받는 시진핑(출처: 2022/07/01, 뉴시스)
홍콩에 적용된 일국양제는‘제국형 통합모델’이다. 일국양제는‘하나의 중국’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대일통 원칙을 전제로 하여 홍콩의 기존 체제를 50년 동안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하는 항인치항(港人治港)과 국방과 외교를 제외하고 중국이 홍콩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고도자치(高度自治)를 보장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이와 관련된 법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1990년 제7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3차 회의에서‘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에 관한 결정’을 통과시켰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홍콩 사회와 중국(홍콩 정부)은 여러 가지 문제들로 대립하였다. 대표적으로 2003년‘국가안전법’입법과 2012년 애국 교육을 위한 국민교육과정의 도입 등등에 대한 강력한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홍콩 정부는 그때마다 정책을 철회하면서 한발 뒤로 물러났다. 일국양제의 기본 원칙과 시행도 크게 훼손되지 않고 비교적 충실히 유지되었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이후 홍콩에 대한 중국의 직접적인 관여가 빠르고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다. 2014년 6월 중국은‘홍콩특별행정구의 일국양제 실천’이라는 백서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일국양제의‘양제’와‘일국’을 동등한 가치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중국이 홍콩에 대한‘전면관치권(全面管治权)’뿐만 아니라 홍콩의 고도자치권에 대해서도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홍콩 통제의 가장 강력한 상징은 바로 홍콩 입법회를 우회하여 2020년 6월 30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서 통과된‘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다. 홍콩보안법은 중국에 반대하는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는 매우 강력한 조치들을 담고 있다. 홍콩보안법에는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분석 및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홍콩 주재 중앙정부 국가안보국의 신설도 포함하고 있다. 홍콩을 강압적으로 통치하고 홍콩인들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있어 일국양제 종언의 변곡점이자 중국정부가 홍콩을 직할 통치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2003년 국가안전법 제정은 홍콩 사회의 반대에 직면하여 좌절되었는데, 2020년에 더욱 강력해진 무소불위의 홍콩보안법이 홍콩 사회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것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가 2021년 3월에 통과시킨‘홍콩특별행정구 선거제도에 관한 결정’은 홍콩 입법회를 관변화시키고, 애국심과 준법정신을 기준으로 출마 후보의 자격을 심사하겠다는 것으로 항인치항에서 애국자치항(愛國者治港)으로의 전환을 의미하였다.
  • 2017년 7월1일 홍콩 반환 20주년 기념식(왼쪽)과 2022년 7월1일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오른쪽)에서 캐리 람 행정장관과 존 리 행정 장관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선서 뒤 인사를 하고 있다(출처: 2020.07.08. 한겨레)
시진핑 시기 홍콩에 대한 강경한 정책으로 전환된 이유를 몇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은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선출과 관련된‘우산혁명’그리고 2019년‘범죄인 인도법(송환법)’반대 운동과 같이 홍콩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또한 향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반(反)중국화’현상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기에는 고도자치를 허용하는 일국양제 체제가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였다. 또한 홍콩에서 갈수록 확대되고 있는 탈중국화와 홍콩 독립의 주장과 같은‘홍콩 정체성’강화에도 큰 위기감을 느끼고 근본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일통 체제하의 일국양제가 지방 자치나 분권을 넘어 독립 지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중국 체제를 붕괴시키는 매우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한다.
홍콩은 오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경험을 토대로 발전된 세계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1978년 개혁개방을 추진한 중국에게 홍콩의 경제적 가치와 역할은 매우 중요하였다. 홍콩의 발전 경험은 개방 정책을 통해 중국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중국에게 큰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홍콩은 더 이상 중국 경제를 주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 경제의‘후광’효과를 얻는 위치로 전락하였다. 중국의 선전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들이 국제금융과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면서 홍콩의 위상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홍콩에 대한 강경한 정책 전환은‘강한 중국’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시진핑의 정치 슬로건인‘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제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더 이상 중국은 외부 세계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고 표명하고 있다.‘중국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국력 성장에 따른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것은 시진핑 개인뿐만 아니라‘100년 치욕’을 경험한 중국(국민)의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 중국은 현재를 미국을 추월할 수 있는‘전략적 기회의 시기’로 본다. 지금 세계가‘100년 만의 대변혁기’에 있다는 시진핑의 언급에는‘국운 상승’의 기회를 확실히 잡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 외에 양극화의 확대와 저성장과 같은 사회경제적 불안정성 증대, 지속적인 소수민족 지역과 타이완의 탈중국화 현상, 첨예화되고 있는 미국과의 갈등과 미국의 중국 분열 정책 등과 같이 중국이 직면한 내외의 불확실성 확대 역시 홍콩에 대한 강압적인 태도로 전환하는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부를 철저히 단속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때 보다 높아졌다고 본 것이다.
일국양제의 성공 여부는 중국이 세계에 보여주고자 하는‘중국의 길’이라는 미래상과 연동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 던지는 새로운 보편적 가치와 질서의 시금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일국양제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홍콩의 일국양제는 타이완을 비추는 거울이며, 홍콩의 현재는 타이완의 미래이기에‘통일몽’을 꿈꾸는 중국이 일국양제의 안착과 성공을 간절히 원할 것이라는 기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타이완 역시 일국양제를 거부하고 있으며, 타이완의 독립을 원하는 분위기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일국양제의 종언은 강고한 당-국가체제 아래에서 패권적ㆍ민족적 국민국가로 전락한 중국의 한계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보인다. 진정한 중국몽의 실현은 강압적인 방식으로 통일몽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민족국가의 모순과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다양성과 이질성을 포괄하는 공생의‘열린’제국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제국 중국과 주변 국가들은 사대자소(事大字小)를 통해 상호결속의 강화와 공존·공영의 위계체계를 구성하여 천하의 안정적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대일통과 제국성의 원천이자 일국양제가 지향해야 할 길로 보인다. 2022년 10월 20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의 중국은 그러한 길로 나아갈 수 있을까?

목원대학교 중국어중국통상학과 교수 이종화

페이스북 트위터 인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