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시작하는 동아시아 서발터니티와 시민성 연구

동서대 중국연구센터가 한국연구재단 주관 2022년 인문사회연구소사업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총 9명의 연구자로 구성된 연구단이 발족되었다. 동서대 중국연구센터가 제안한 인문사회연구소사업의 연구과제는 순수학문형 연구과제로 <동아시아 서발터니티와 시민성 : 부산에서 중화권 관문도시로> 라는 주제이다. 이 연구는 동아시아 관문도시를 기점으로 역사적으로 형성된 동아시아의 다양한 차별 문제에 이론적, 실천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것으로서 부산 등 한국의 관문도시와 상하이, 훈춘, 가오슝 등 중화권 관문도시의 서발터니티를 비교 연구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새로운 시민성 출현의 단초와 새로운 연대의 주체를 발굴하려는 시도이다.
기실, 지난 몇 년 사이에 중국, 대만,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침묵을 강요당한 취약한 존재들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동시대적으로 터져 나왔다. 한국에서는 전국장애인연대 시위, 성소수자 변희수 하사 사건, 난민 승인이나 새터민 수용 문제,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사건, 지속적인 미투 운동 등이 발생했다. 중국에서도 이른바 싼허(三和)청년이라 불리던 일용직 신노동자(新工人) 문제, 도시 하층민을 의미하는 저단인구(低端人口) 퇴거 사건이 발생했고 펑솨이(彭帅)의 미투 사건과 같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 중국의 대표적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에 대한 강제 수용 문제 등이 폭로되었다. 대만에서도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원주민 이름 찾기 운동, 대만판 n번방 사건 등이 발생한 바 있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취약한 존재들의 이슈가 발생하는 폭력적 차별 상황을 외면한 채, 동아시아에서 인권이나 평화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동아시아의 취약한 존재들과 관련된 유사한 연구는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다양한 개념으로 분산되어 있고, 실체가 가려진 경우도 여전히 많아 아직 연구가 충분치 않은 상태이다. 한국의 인문학계와 사회과학계에서 개별 소수자를 연구한 사례는 적지 않다. 대만에서도 취약한 존재들 예컨대 원주민, 여성, 빈곤층, 이주민 등에 관한 연구는 제법 축적된 상태이다. 중국에서는 관련 연구가 주로 저층(低層) 연구의 이름으로 개혁개방 시기 이후에 등장했다. 하지만 중국의 저층연구는 차별과 폭력을 방조하는 체제의 문제를 크게 다루지 못하고 개발주의 신화나 성장주의 관점에서 저층에 대한 실태조사나 정책 마련의 일환으로 이뤄진 연구가 많아 주체성의 관점에서 저층의 권리를 분석하는 연구는 매우 적다.
결국, 이렇게 동아시아에서 취약한 존재들의 이슈를 포괄적 시선으로 접근한 연구는 극소수이며 더욱이 이를 동아시아의 연대와 공공성의 비전과 연결한 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한국, 중국, 대만 등은 일본제국주의, 냉전적 국가권력, 급속한 권위주의적 경제발전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공통적으로 경험한 만큼, 취약한 존재들과 관련된 연구들을 집대성하는 새로운 시각과 개념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결성된 동서대 중국연구센터의 공부모임은 동아시아 각국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부재(不在)처리되거나, 저항의 목소리를 내도 차별받아온 사회적 약자를 총칭하는 개념으로 ‘서발터니티(Subalternity)’ 개념을 제시하고 동아시아의 이러한 서발터니티 해소 여부가 새로운 동아시아 시민성 구현의 관건임을 논증해야 한다는데 공통의 인식을 같이 했다. 즉, 현대 동아시아 사회는 형식적으론 모든 사람이 시민권을 쟁취한 듯하지만,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은 침묵이 강요되거나 저항의 음성이 묵살되는 등 시민권이 온전하지 않거나 박탈된 상황이라고 보았고 이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동아시아에서 인간의 조건을 박탈당한 존재가 자신의 자리와 권리를 요구할 때 새로운 정치적 공공성이 나타날 것으로 보았다. 즉, 동아시아에서 서발터니티 문제가 해소되어 그들에게 시민권이 온전하게 보장될 때 새로운 동아시아 시민성과 공공성이 구현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동아시아의 서발터니티와 시민성의 문제를 좀 더 새로운 방법론으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고안한 방법이 서발터니티에 대한 환대와 배제가 함께 이뤄지는 지리적 공간으로서 ‘관문도시(gateway city)’ 연구를 결합하는 것이다. 즉, 본래 장소는 생활세계이자, 인간실존의 근본적 토대라는 점에서 관문도시라는 구체적 장소성(placeness)에 입각한 동아시아 서발터니티 연구를 하려는 것이다. 관문도시라는 장소는 개방=길/폐쇄=벽이라는 이중의 역학을 통해 타자에 대한 배제와 환대가 공존, 서발터니티 문제의 생성과 해소가 동시에 가능한 이중적 공간으로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관문도시라는 구체적 장소성에 입각하면, 동아시아 각국의 서발터니티 배제와 환대의 역학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고 나아가 동아시아지역 차원의 시민성 향방도 구체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장점을 가졌다고 보았다. 이러한 점에서 동아시아의 관문도시는 동아시아 각국이 서발터니티를 대하는 시험대(test-bed)인 동시에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정체성을 완성해가는 경계지로서 매우 중요한 장소인 바, 동아시아 서발터니티 연구의 최적의 장소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동서대 중국연구센터가 소재한 부산은 동아시아의 대표적 관문도시인 바, 이 연구는 부산의 서발터니티 연구를 시작점으로 하여 대만, 중국 등 중화권 관문도시의 서발터니티 연구로 나아가면서 부산 등 한국의 관문도시와 상하이, 훈춘, 가오슝 등 중화권 관문도시의 서발터니티 비교를 통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시민성 출현의 단초와 새로운 연대의 주체를 발굴할 예정이다. 기실 한국, 중국, 대만은 전제 왕정과 제국주의 침탈, 전쟁과 분단, 냉전과 급속한 산업화, 탈냉전과 신자유주의라는 복잡한 역사적 관계망 속에서 서발터니티 이슈가 연쇄적으로 발생한 동아시아 지역 안에 존재해 온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의 관문도시에서 벌어졌던 서발터니티 배제와 포섭의 역학은 부산 등 한국 관문도시의 서발터니티 이슈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고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중화권과 한국의 서발터니티 연구를 관문도시의 차원으로 체계화하여 향후 비교연구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관문도시 선정은 동서대 중국연구센터가 소재한 부산을 기준점으로 비교할 가치가 있는 중화권의 주요 관문도시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한국의 경우 일제 식민 시기부터 한국의 주요 관문도시로 성장한 부산과 군산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했는데, 부산은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착수된 동아시아 연구인 동시에 일본 등 동아시아 해양세력과 연계되는 동시에 한국의 군산 등 서쪽 관문도시와의 연계를 통해 중화권 동아시아 연구에 접근하기 위한 효율적 교두보 역할을 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중화권의 경우, 중화권의 핵심 관문도시이거나 장소적 특징이 뚜렷한 중국 4곳(상하이, 선전, 훈춘, 단동), 대만 2곳(타이베이, 가오슝), 홍콩 등 총 7곳을 연구대상으로 선정하였다.
향후 우리의 동아시아 관문도시의 서발터니티와 시민성 연구는 두 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우선적으로 1단계 3년 동안은 동아시아의 차별 구조와 관문도시의 서발터니티를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2단계 3년은 동아시 관문도시 서발터니티의 상처의 흔적과 저항의 동학을 연구할 것이다. 즉, 1단계에서는 동아시아 관문도시의 서발터니티를 발생시긴 동아시아의 차별구조를 ①신화적 층위, ②자본의 층위, ③신체의 층위의 3가지 권력의 층위에서 분석할 것이다. 세 가지 층위를 통해 서발터니티에 착종된 다층적 억압과 폭력 중 상당수를 구분하고 차별 폭력들이 어떻게 교착됐는지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2단계에서는 동아시아 관문도시의 서발터니티에 관한 억압과 저항의 동학을 보여주는 물리적 구현물과 담론 논쟁을 분석하고 서발터니티 저항의 연대운동 사례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의 새로운 시민성의 가능성을 평가해 볼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동아시아를 보는 새로운 비판적 시각을 정립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동아시아에서도 가장 취약한 존재인 서발터니티 이슈를 통해 기존 동아시아 질서의 전체를 보는 비판적 방법론을 궁극적으로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욱이 동서대 중국연구센터는 이 연구를 통하여 동아시아 내 혐오와 갈등 문화를 해소하고 동아시아의 문화다양성 풍토 정착과 동아시아 도시의 인문협력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동서대 중국연구센터의 인문사회연구소 사업단은 이제 <동서중국 웹진>의 「동아시아 서발터니티와 시민성」 칼럼란을 통해 본 사업단 구성원들이 본 연구 과정의 학술적 쟁점과 연구 과정을 독자들에게 수시로 보고할 예정이다. 많은 독자들과 연구자들의 비판적 제언과 격의 없는 토론을 부탁드린다. 본 연구는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진행되는 무의식적 관성에서 벗어나 관문도시 부산이라는 새로운 장소성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관성에 입각하여 새로운 동아시아 연구 성과를 제출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중국연구센터 소장 이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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