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역사 속 경제 이야기

교단에서 중국경제를 가르치고 있는 필자도 몇 년 전부터 캠퍼스에 ‘열풍’처럼 불고 있는 융복합에서 자유롭지 않다. 제너럴리스트가 정답인지 스페셜리스트가 중요한지는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할 것이다. 융복합은 마치 이 둘을 섞어놓은 것 같다. 필자도 최근 ‘화식열전으로 보는 중국경제’라는 ‘융복합형’ 교양과목을 개설한 이후, 역사 속의 경제 혹은 경제를 통해 읽는 역사 책을 추가로 찾고 있었다.
‘화식열전’은 사기(史記)라는 역사서에 등장하는 경제이론서이다. 저자 사마천(司馬遷)은 중국 전한시대(前漢) 역사학자이다. 예수가 태어나기 145년 전(B.C.145)에 등장한 그는 부친 유언으로 역사를 편찬하게 된다.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한무제 의견에 맞서다 치욕스러운 거세형(궁형)을 택해 목숨을 보전한 그는 중국 최고 역사서인 사기 130권을 완성한다. 고문헌을 정리하고 현장답사로 완성한 사기는 3000년 중국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5가지 유형 중 왕과 제후는 물론 일반인에 관한 기록인 열전(70권)은 현재의 ‘스토리텔링’ 같은 생동감이 넘친다.
화(貨)는 재산, 식(殖)은 불어난다는 뜻으로 요즘의 재테크 기법인 셈이다. 화식열전은 춘추시대 말기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상공업으로 부를 쌓은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를 기록했다. 이들은 현재의 기업가에 해당한다. 2천년전 사마천은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했다. 농·공·상업의 분업은 사회·경제생활에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상업이야말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전제 조건으로 보았으며, 당시 모든 직업을 중시하는 진보적 면모를 보였다. 이는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에 반기를 든 것이다.
2천년전 사마천이 설파한 ‘경제론’은 고전경제학 창시자 아담스미스와 조목조목 비교하지 않더라고, 수요와 공급의 규율과 성장과 분배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국가의 간섭을 비판한 대목은 ‘역사·경제입문서’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화식열전은 수 천년의 시간을 오가며 인물별 재테크 사례, 지역별 특성, 자본의 활용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올해 10월에 국내에서 출간된 <역사 속 경제 이야기>는 진시황(B.C.259~B.C.210)부터 수문제(541~604)까지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경제학점 관점에서 관찰하고, 경제학 이론을 대입하여 서술한 책이다. 원서는 2016년 베이징대출판사에서 출간된 《穿越历史聊经济(역사를 넘나들며 경제를 이야기하다》이며, 저자는 왕링옌(汪凌燕)과 왕퉁(汪通)이다. 왕링옌은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 분야를 연구하며, 벤처기업 CEO를 맡고 있다. 왕퉁(에든버러대 경영대학원 조교수)은 프랑스 툴루즈경제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독과점 기업에 대한 규제 방안을 연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2014)을 수상한 장 티롤 교수에게 경제학을 배웠다. 즉 이 책은 경영 및 경제 전공가 쓴 역사 해설서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경제학 콘서트’(팀 하포드. 2006)처럼 스타벅스 커피와 같은 우리 주변의 현실 생활을 끌어와서 경제학 이론을 설명하는 대중적인 도서라기 보다는 다소 전문적인 경영 및 경제이론을 역사 속 사실에서 풀어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코즈의 정리, 린달 균형 같은 다소 전문적인 경제 이론은 물론, 인플레이션, 규모의 경제 등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시사경제 상황도 설명되고 있다.
중국 역사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진시황(중국 최초 통일군주), 삼국지의 조조와 제갈량도 등장하지만, 전한말 신(新)왕조의 창시자인 왕망(B.C45-A.D23), 한무제 때 철과 소금의 국가 전매제(염철론)를 주장한 관리 상홍양(B.C.152-B.C80)도 등장한다. 따라서 독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중국 역사 속의 중요한 인물들을 경제적 관점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또한 각 장에서는 우리가 경험한 최근의 경제적 이벤트와 역사적 사실을 연결하여, 독자의 이해력을 높여준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2009년 유럽의 재정위기를 소개하며 아이슬랜드와 그리스가 직면한 경제위기의 원인과 결과를 수 천년전 상황에 대입하여 설명함으로써 보다 생동감 있게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한나라 때 동전과 비트코인이 비교되며, 왕망과 북한 김정일의 화폐개혁이 비교되고 있다. 삼국시대인 208년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 조조와 싸워 승리한 적벽대전 역시 게임이론으로 해석되며, 그 사례로 삼성전자와 애플, 안드로이드 시스템을 개발한 구글이 등장한다.
본문은 모두 14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 등장한 역사적 배경과 주요 경제이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장 전국시대와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 경제(영국 브렉시트), 2장 한나라의 화폐전쟁(일반균형이론), 3장 한나라의 재정위기(옵션과 국채), 4장 한무제의 국영기업과 시장독점(비트코인), 5장 공신의 운명과 게임이론, 6장 황금과 백옥으로 장식된 칼(양적완화), 7장 광무제의 등장과 동한의 운명(조세제도), 8장 동탁이 초래한 악성 인플레이션, 9장 제갈량의 경제외교(게임이론, 비교우위이론), 10장 위진시대의 토지개혁과 인재 경영(외부효과), 11장 망국 황제의 마지막 선택(금융위기), 12장 천하를 손에 넣은 북방 민족의 한화 개혁, 13장 제어가 불가능한 총체적 난국(린달세율), 14장 수문제의 제도 개혁과 철권 통치 등이 있다. 마지막에는 본문에 쓰인 주요 경제학 용어 해설을 추가하여 놓았다.
이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유방의 넷째 아들인 한문제(B.C202-B.C157)는 재정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때 조착이라는 신하는 재정 건실화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고, 한문제는 이를 과감히 받아 들였다. 바로 작위를 돈을 받고 파는 것이었다. ‘매관매직’이라 함은 돈을 받고 관직과 작위를 파는 것인데, 이중 작위(爵位)만을 판매하게 된다. 관직은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지만, 작위는 일종의 명예직이다. 실제 한나라는 작위 판매로 한동안 경제를 안정화 시킬 수 있었다. 평민이나 귀족, 상민들이 작위를 사는 이유는 토지 개간권, 부역 및 조세 면제권 때문이었다. 조착은 단순한 명예직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 주었던 것이다.
또한 농민들도 곡식으로 작위를 살 수 있었는데, 이는 곡식의 용도가 더 다양해지고 유동성이 높아지며, 곡식을 생산함으로써 더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로써 농업과 상업 사이에서 고민하던 사람들이 ‘농업에 더 전념’할 수 있게 하는 효과를 불러왔고 이는 식량 안정화로 이어졌다. 계절에 따라 수확하는 곡물은 수확기에는 가격이 낮아지는 반면 춘궁기에는 가격이 올라갔다. 그래서 영리한 상인들은 가격이 낮을 때 많은 곡물을 구입해 작위를 사는 데 사용했다. 경제학자의 시선에서 보면 조착이 제안한 방안은 영구적 국채와 토지 옵션, 개간 허가증을 하나로 묶은 혼합금융상품이라 할 수 있다. 즉 동전은 비축하더라도 화폐제도가 바뀌기라도 한다면 일시에 가치가 폭락할 위험이 있고, 곡물 역시 장기보관하기에는 벌레와 습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반면 작위는 이를 해결하는 훌륭한 금융상품이었던 것이다. 즉 한나라가 멸망하지 않는 한 배당과 이자(노역과 조세면제)가 보증된 국채인 셈이었다.
이제 400년이 지난 삼국시대로 내려 가보자. 제갈량(181-234)은 우리도 잘 아는 삼국지의 중요한 주인공 중 하나이다. 그에게도 군사력 못지 않게 나라의 빈 곳간을 채우는 일이 더 중요한 국사였다. 제갈량은 텅 빈 국고를 채울 방법을 고심하던 유비에게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놓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유비에게 창고 안에 있는 군량미를 풀어 민간의 금은보화를 구입하고, 그 다음에 대전(고액 화폐)을 발행해 다시 곡식을 사들이도록 했다. 이는 제갈량이 ‘양적완화(자금방출로 경기부양)’를 구사한 것이다. 잘된 양적완화 정책은 무분별하게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은행이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이용해 시장에서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구매하는 것이다. 제갈량은 정부 지도자이자 중앙은행 총재인 유비에게 시장에서 유동성이 높은 곡식(단기채권)을 활용해 금은보화(장기채권)로 교환하라고 건의한 것이다.
이제 시장에 곡식이 많아지면 곡식의 가치는 하락하는 반면 동전의 가치는 상승한다. 그리고 동전의 가치상승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구매력 저하)을 의미한다. 이때 대전 발행은 유동성이 아주 높은 자산인 국채를 내놓는 것과 같다. 그러면 곡식이 많은 사람은 장기보관이 어려운 곡식을 팔아 국채(대전)를 사고 싶어 할 것이므로, 일부 곡식은 다시 유비에게 돌아오게 된다. 이처럼 절묘한 방법을 이용해 제갈량은 유비가 정치적으로 부하들의 신임을 얻는 동시에 재정 문제도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필자는 도서관장에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종종 좋은 책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대중적으로 공인된 베스트셀러도 좋은 책이고, 본인이 읽어서 쉽게 이해되고 기억에 오래 남는 책도 좋은 책이다. 하지만 도서관장이라는 ‘직업적 관점’에서 보면, 읽고 나서 또 다른 책을 보게 만드는 ‘흥미 유발’ 도서가 가장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너무 어렵지도, 또 너무 통속적이지도 않은 역사 속 경제서라 할 수 있다.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을 읽고 본문에 언급된 또 따른 역사서나, 경제서를 찾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필자 역시 다시 서가에서 ‘화식열전’을 찾아보았으니 말이다.

부산외대 교수 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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