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혁개방 40주년에 대한 단상

금년은 중국이 덩샤오핑에 의한 개혁개방이 시작된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며칠 전 개혁개방의 출발지이며 1992년 남순강화의 중심지인 광동성 광저우의 발전된 모습을 보면서 지난 40년간 지속되어온 중국의 발전상에 대해 새삼스레 커다란 인상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주지하다시피 개혁개방 정책에 따른 성과로 중국의 GDP는 큰 폭으로 확대되어 중국은 2010년 이후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고,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의 중국의 위상은 G-2로 불리듯이 크게 강화되었다. 중국에서 매년 개최되는 국제금융포럼(IFF)이 최근 정리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40년간 중국 산업의 부가가치는 평균적으로 매년 10.8% 증가하여 1978년의 53배가 되었고, 제조업은 2010년부터 세계 제1이 되었다. 무역은 1978년의 206억불에서 2017년 4조불을 초과하였고, 공업제품은 2000년 이후 전체 수출의 90%를 넘었으며, 2017년에는 기계류와 전자제품만 해도 1조 2,000 불을 수출하는 수준이 되었다.

동 자료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중국인들의 생활수준도 크게 향상되었다. 1978년 343위안이었던 도시지역의 1인당 가처분 소득은 2017년 36,000 위안, 농촌지역의 가처분 소득은 134위안에서 13,500 위안으로 각각 100배 이상 증가되었다. 아울러 빈곤층 국제기준인 2011년 PPP로 하루 소득 1.9불 미만인 중국인은 1981년 전체인구의 88.3%인 8억 7천만 명에서 이미 2013년에 1.9%인 2천 5백만 명으로 크게 감소하였다. 중국기준으로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농촌지역 1인당 년간 소득 2,300 위안 미만 인구는 1978년 97.5%였으나 2017년에는 3.1%인 3천만 명 수준으로 격감하였다. 중국의 산업경쟁력 역시 크게 향상되었다. 1978년 당시 국제적으로 알려진 중국 기업은 전무했다고 할 수 있지만, 1995년에 이르러 포츈지의 세계 500 대 기업에 중국의 기업이 3개 포함되었으며(한국은 8개), 2017년엔 115개가 포함되어 미국(132개) 다음으로 많게 되었다(한국은 15개). 현재 중국은 전 세계 제조업의 중심이 된 것에서 더 나아가 4차 산업혁명에서의 선두그룹에 들어 있으며, 인터넷을 통한 거래대금 결제는 물론이고 휴대전화 사용내용을 기초로 한 빅데이터를 대출 신용 정보에 활용하는 핀테크를 발전시킬 정도로까지 발전되고 있어 이제는 오히려 한국이 상당히 많이 배워야할 상대로 성장하였다.
  • 사진출처 :클립아트코리아
그렇지만 중국의 경제발전이 지난 40년간 눈부시게 발전해왔어도, 이러한 발전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으며, 이런 점에서 중국 내 다수의 전문가들은 중국이 앞으로 시급히 다루어야 할 과제들로서 생태환경의 보호, 빈부차이의 해소, 경제성장을 지속시키기 위한 내수확대 등의 문제를 여전히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법률과 정책결정의 공개성과 투명성 부족을 지적하는 한편, 지적재산권 보호와 시장접근과 참여에서의 공정성 강화, 그리고 법체계의 권위와 운용능력을 제고시키는 것 등도 앞으로의 과제로서 언급하고 있다.

한편 지난 40년 중국의 국내정치나 국제관계에서의 성과라면 이러한 경제적 발전을 가져오기 위한 국내정치와 국제관계의 안정을 확보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앞으로도 이와 같은 안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우선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개혁개방의 성과는 명암이 엇갈리고 있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중국이 죽의 장막을 벗어나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고 미국에 버금가는 국제사회의 대국으로서 글로벌 거버넌스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으며,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일대일로와 같은 글로벌 전략을 중국이 전개할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히 개혁개방의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힘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의 지나친 강조는 중국 외교정책의 공세적 성격과 강경함을 초래하였으며 이에 따라 중국의 부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계심이 높아져 온 것도 사실이다. 현재 미중간의 무역분쟁 등도 국제사회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목표로 하려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에 대한 미국의 불신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는 미국 조야의 전반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며, 서구국가들도 이러한 미국의 대중국 압박을 은근히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인들도 사드배치 문제를 겪으면서 중국이 물리적 힘을 바탕으로 이를 국가관계에 사용한 사례를 체험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이 앞으로도 개혁개방을 계속하고 중국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중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경계심을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대외정책의 조정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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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의 업적은 비단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했다는 것 뿐 아니라 국내정치의 제도화라는 측면에서 많은 평가를 받아왔다. 매 5년마다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하여 새로운 지도자와 후보자를 선출하고, 그 사이에는 정기적으로 중앙위원회를 개최하여 주요 정책을 결정하도록 하였으며,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하여 마오쩌둥과 같이 누구 한 사람의 지도자가 권력을 독점하지 않도록 하는 한편, 당정 고위 간부들이 일정한 연령에 달하면 은퇴하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고, 차차기 지도자 후보를 미리 선정하여 학습토록 하는 등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도록 한 일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정치의 제도화는 당정분리 문제가 제기될 정도로 후진타오시기까지 계속 발전해 오다가 시진핑 시기에 들어서 시진핑의 권력이 대폭 강화되고 이에 따라 집단지도체제의 성격이 약화되면서 서구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다소 퇴보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특히 지난 봄 몇 명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움직여서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직의 연임제한 조항을 폐지함으로써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시진핑이 평생 집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국내외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크게 확대된 계기가 되었다.

물론 현 중국 지도부는 이에 대해 중국공산당의 강력한 영도 하에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 달성을 위해 중화민족의 단결을 촉구하는 한편, 신시대 시진핑 중국특색 사회주의 건설을 내세우며, 서구 방식의 민주주의가 아닌 중국특색의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 내에서는 현재 1인 권력 강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뿐 아니라 국민들의 의사표현에 대한 당의 통제가 강화됨에 따라 시진핑 주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최근 만나게 되는 일부 중국 인사들은 대체로 당의 통제 강화로 인해 학술연구나 견해발표가 당의 이념과 정책방향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데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인터넷과 SNS의 발전에 따라 그간 향유해 왔던 자유로운 의사표현에 통제가 가해지는 것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곤 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알리바바의 마윈이 떠나게 되는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추진되고 있는 혼합소유제가 민간의 자본과 경영능력이 국영기업에 반영되기보다는 오히려 민간기업 활동에 대한 국가의 통제가 더 늘어 소위 국진민퇴 현상이 심화되는데 대한 불만이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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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지난 11월 23일 시진핑은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류샤오치 전 국가주석의 탄신 120주년 좌담회를 개최하고, 시진핑의 중요말씀(重要講話)으로서 5가지 류샤오치의 모범을 학습하자는 것이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된 것이 눈길을 끈다. 이러한 모범에는 진리를 견지하고 실사구시하며 맡은 일은 책임감을 갖고 창조적으로 하되, 잘못된 것은 적극 수정하는 것을 배우자는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후진타오 시기 2008년에 탄신 110주년 좌담회 당시에도 후진타오 주석이 비슷한 말을 하긴 하였지만, 최근 시진핑 통치에 대한 국내 여론의 악화라는 상황은 이러한 착오수정에 대한 언급이 그냥 관례적인 내용일 뿐이라고 지나치기 어렵게 한다. 사실 류샤오치는 1960년초 대약진 운동의 실패 이후 국가주석으로서 광범위한 조사연구를 거쳐 경제건설이야말로 국가와 인민의 중심임무라는 명제 하에 실용적인 경제정책으로의 전환을 추진하다가 결국 문화대혁명의 와중에서 홍위병으로부터 갖은 수모를 당하고 감옥에서 옥사하였으며, 이후 덩샤오핑에 의해 복권이 된 인물이다. 공식기록에는 당시 린뱌오와 장칭 등 4인방에 의해 모함을 당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그 배후에는 권력약화를 우려한 마오쩌둥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 이념과 마오쩌둥 사상을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시진핑 주석이 류샤오치의 실사구시 정신과 더불어 잘못된 것을 수정하는 자세를 학습하자고 하였으며, 이를 시진핑의 중요말씀이라고 보도되는 것이 현 상황에서는 새삼스럽게 느껴지며, 앞으로의 국내정치 동향을 좀 더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견해의 근거이기도 하다.

동서대 중국연구센터 소장 신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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