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아, 비아의 마주서다

1. 신채호에 대한 역사적 평가
근대는 서세동점과 제국주의 침략, 그리고 망국이란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근대적 격변은 정치·경제적 변화였을 뿐만 아니라, 삶 및 사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문명사적 전환이었음에 틀림없다. 이전과 전혀 다른 근대적 삶의 양식을 이해하고 그 가운데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누구도 삶의 전범이 되어주지 못했고, 스스로 새 길을 열어나가야만 했다.
근대적 삶 한가운데서 근대적 삶 넘어서기를 시도했던 이가 신채호였다고 하겠다. 신채호를 한국 근대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자리매김하는 것과 저항적 민족주의자로 평가하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흔히 학계에서는 신채호를 유학자에서 애국계몽운동과 민족주의자로, 다시 아나키스트 사상적 격변을 거친 실천적 지식인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유학에서 사회다윈주의로, 그리고 다시 아나키즘으로 세 차례나 세계관의 변화를 겪은 사람이라니... 심지어 어느 연구자들은 저항적 민족주의와 무정부주의(아나키즘에 대한 오역)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몰라 길을 잃기도 한다.
신채호가 민족주의와 반제국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띠었다는 점에서 근대 한 가운데 서있는 사상가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신채호를 열렬한 저항적 민족주의자나 아나키스트로 읽고자 하는 관점 역시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채호의 사상적 특징은 조선의 주체인 ‘아’와, 아와 비아의 관계맺음에 있다.
2. 아와 비아: 상호의존적 주체들
서구 근대문명은 인간과 자연, 주체와 대상, 주체와 타자, 심지어 인간마저도 육체와 정신으로 이분화하는 사유를 근간으로 하였다. 이분법적 사유에 기반한 서구 근대 주체는 계몽을 통해 미성숙한 상태에서 벗어나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단계로 나아갈 수는 있지만, 단자적인 개인이 ‘타자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충분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그들 내부에서도 문제였지만, 세계적 차원에서도 비극을 초래하였다.
근대적 ‘타자’란 서구의 이성적 주체를 준거로 했을 때 비서구를 가리키기도 했다. 계몽된 이성에 기반한 유럽의 우월의식은 미성숙한 상태에 있는 야만적 타자를 전제해야만 성립 가능하였다. 근대 유럽인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결핍된 타자’란 비서구지역의 자기의식은 이런 유럽중심주의의 산물이다. 서구 근대 주체는 타자를 오직 주체가 아닌 것, 혹은 문명적으로 열등한 것, 이성적 사유가 불가능한 상태, 야만적인 계몽의 대상 등으로 치부했으니, 애초에 타자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주체는 타자를 계몽을 통해 주체화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이성이란 동일성의 원리에 타자를 포획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에서 차별화함으로써 배제하는 담론이었다. 주체는 타자에게 그들처럼 되기를 강요하면서도 자신들의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열등함을 증명하고자 하였고, 그 문명적 간극은 결코 좁혀질 수 없다고 여겼다. 만약 인도란 식민지가 없었다면 영국의 산업발전은 도모하기 어려웠을 것이며, 비서구의 열등한 야만이 없었다면 유럽 백인종의 문명적 우월성 역시 성립할 수 없었을 것인데도 그러했다.
근대체제는 유럽 중세의 권위와 신화로부터 ‘개인’을 해방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서구적 주체가 비서구의 타자를 폭력적으로 통제했던 부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주체는 문명적 기술적 우월성을 타자를 통해 확인하고 식민지배를 백인의 의무로 정당화하였지, 타자와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맺음하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채호는 제국주의침략이란 근대의 파고 한가운데서 자기 정체성을 물었던 사상가이다. 그는 당대를 국가경쟁시대이며 제국주의시대라고 인식하였고, 고유한 조선의 근대주체인 ‘아’의 정립을 통해 시대문제를 헤쳐 나가고자 하였다. 신채호는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我라고 하고, 그 외에는 非我라고 한다.(『丹齋申采浩全集』 상 「朝鮮上古史」 31쪽)”고 하였다. 예를 들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라 하고 영국과 미국 등을 비아라고 하지만, 영국과 미국은 각기 제나라를 아라 하고 조선을 비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즉 주관적 위치에 선 아가 아닌 것을 비아라고 한다면 비아의 위치에서는 아가 비아가 된다. 주관적 위치에 선다는 것은 주체적인 자기의식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런 측면에서 아는 비아로 환원할 수 없는 自性을 가진다. 또한 아의 중요한 특징은 비아와 마주선 존재라는 점이다. 그는 아는 비아와 마주선 존재이며 비아는 아와 마주선 존재로 인정함으로써, 아와 비아가 어떤 관계맺음을 할 것인가에 집중했다고 할 수 있다.
아와 비아의 마주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의 ‘아됨’이다. 즉 아의 ‘아됨’이란 비아와 구별되는 자기의식으로서, 아됨이 정립되어 있어야 비아와 동등한 자리에서 마주서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신채호는 아의 자성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신채호는 비아와 구별되는 아의 속성 즉 自性은 恒性과 變性으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항성은 역사적 정체성으로서 역사적으로 계승되어온 선천적 실질이며, 변성은 시대적 보편성으로서 ‘지금 여기’란 삶의 맥락에서 비아와의 관계맺음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후천적 형식을 말한다. 아가 아됨에 있어 항성, 즉 선천적 실질이 우선하며 비아와 차이짓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아의 항성만을 무한 확장하게 되면 비아 없는 아가 됨으로써 아의 자성 역시 유지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아의 변성은 현재적 맥락에서 비아와 관계맺음할 수 있는 계기와 열림을 가능하게 하지만, 변성이 지나치게 많으면 비아화 즉 타자화됨으로써 아의 자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곧 아의 멸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채호는 아의 생존을 위해서는 항성이 변성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아가 자성을 가졌듯, 비아 역시 아와 다른 역사적 주체성을 가진 주체이다. 비아 즉 타자란 주체[아]로 환원되지 않는 자성을 가진 다른 주체들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아 없는 비아나 비아 없는 아란 존재할 수 없으며, 아와 비아는 다른 정체성을 가졌다는 ‘차이’을 존중하지 않고서는 서로 정체성을 정립할 수 없는 상호의존적 주체들이었다. 아는 비아로 환원되지 않는 영속성과 보편성을 가진 주체이지만, 비아와 마주서 관계맺음을 한다는 점에서 근대 계몽적 이성과 구별되었다. 만약 우리가 이성적 계몽을 정체성의 전범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미성숙한 상태의 타자이거나 우리 삶을 우리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하위주체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신채호의 표현을 빌린다면, 이것은 변성이 지나쳐 아의 자성이 상실될 위기 상황인 셈이다.
3. 민족적 ‘닫힘’과 연대적 ‘열림’의 연계
아와 비아가 서로 환원되지 않는 자성을 가진 상호의존적 주체들이라면, 신채호 철학에서 아와 비아의 관계맺음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된다. 관계맺음의 양상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첫째는 투쟁적 관계이다. 근대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자본주의체제를 통해 구축된 유럽중심주의가 보편적 전범으로서 자리잡아가던 시기였다. 이는 19세기 서구열강에 의한 제국주의침략으로 이어졌다. 제국주의시대의 도래는 중화주의 해체와 연속적인 사태였다. 아편전쟁에서 청일전쟁에 이르는 사이, 중국은 문명적 보편성을 상실했으며, 중화주의는 해체되었다. 그리고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동양이란 새로운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유럽중심주의를 재생산하고자 했던 동양주의는 일본이 자국을 중심으로 지역질서를 재편하고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수단이었다. 국가경쟁시대의 두 양태, 즉 유럽중심주의와 동양주의는 강력하고 이질적인 비아가 아의 자성과 생존을 멸절하려는 세계체제였다. 따라서 이에 강력히 저항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하였다. 신채호는 제국주의 및 동양주의와 길항관계에 있는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제국주의에 저항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그의 사상은 저항적 민족주의적 성격이 짙다고 할 수 있다.
신채호의 ‘아’는 타자를 동일성의 원리로 수렴하려는 사유체계를 비판하는 저항적 주체였다. 그는 어떤 주의에 매몰된 비주체적인 상태를 거부하고 아의 삶의 맥락에서 주체적으로 主義를 이해할 것을 강조함으로써 서양문명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유럽중심주의를 재생산한 동양주의에 대한 비판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서구적 문명성에 대한 폐쇄적 거부를 뜻한 것은 아니다. 세계적 지평에서 그들의 문명성을 수용하면서도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해서는 강력히 저항하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러므로 신채호는 서구문명의 보편적 가치를 단순한 모방하거나 번역할 것이 아니라, ‘변성’적 차원에서 수용하여 후천적 형식의 변화를 꾀함으로써 아의 근대적 자성을 발견해 가고자 하였다.
그가 제국주의 침략에 강력히 저항하였지만, 저항적 민족주의가 서구열강과 일본처럼 팽창적 민족주의를 지향하여 제국주의를 추구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가 민족주의적 정체성을 아의 자성의 중요한 요소로 삼았지만, 아의 자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성과 변성의 조화이다. 그가 민족의 역사적 정체성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제국주의처럼 팽창적 민족주의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연대와 평화를 실현하는 ‘열림’의 시작이었다. 아와 비아의 마주섬은 좋은 관계맺음을 하기 위한 것이지, 아의 자성을 무한 확장하는 폭력의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채호는 1923년 <조선혁명선언>에서 ‘인류로서 인류를 억압하지 않고 사회로서 사회를 해치지 않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하고자 한다’고 하여, 민족주의의 지향점을 제시하였다. 그는 스스로 아다움을 선각한 민중이 서로 연대하여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모든 체계를 파괴할 것을 주창하였다. 이는 아의 생존과 독립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정당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 평화를 실현하는 단위가 구성된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자각한 민중들의 자율적인 연대로써 국경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신채호의 ‘연대’는 민족적이면서도 혈통적 민족 담론을 넘어섰다. 그는 세계무산대중 가운데 특히 식민지 민중에 주목하였다. 민중 연대는 제국주의 침략이란 폭력적 세계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민중 생존을 위협하는 일체를 파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하였다. 대다수의 민중 생존이 최소수의 비민중적 강도들의 이해와 공존할 수 없는 탓이었다. 민중의 직접혁명이란 방법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지만, 그것은 제국주의 폭력을 타파하고 일체의 불합리를 제거하며, ‘인류로서 인류를 억압하지 않는’ 자유와 평화를 지향했다. 신채호의 민중 직접혁명은 민족적 정체성을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서 연대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4. 팽창적 민족주의 파고를 넘어, 연대와 평화를!
세계가 자본주의체제로 더욱 단일화하고 있으며, 그런 차원에서 지역적 경제 블록이나 세계기구의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국가체제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보다는 국가적 존립을 강화하기 위한 필요성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담론은 근대 국가주의 자본주의 산업화 등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발전하였다. 민족 국가가 실질적인 삶의 토대로 작동하기 때문에, 민족 국가의 폐해를 문제삼으면서도 국가 해체나 세계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여기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민족담론은 여전히 존립과 해체라는 양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동북아지역문제 역시 이런 세계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제국 일본이 내세웠던 동양주의는 대동아공영을 가장한 일본중심주의였으며, 최근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대표로 자부하는 중국 중화주의 역시 중국민족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민족적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평화적 대등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아시아적 연대’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함께, 중화주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대중화경제문화권에 대한 긴장된 견제가 전제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강대국의 첨예한 이해관계가 집중된 한국은 분단국가로서 그 중심에 서 있다.
세계의 모든 문제가 국가적 삶의 경계인 국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팽창적 민족주의나 국가적 분쟁의 가속화가 인류전체의 평화와 행복증진에 실익이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또 자국이기주의로는 세계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오늘날 인류애에 기초한 연대와 평화의 실현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하겠다.
신채호의 아와 비아와 관계는 주체의 정체성을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아와 비아의 연대를 통해 공동의 보편이념을 실현해갈 수 있는 사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정신이 없는 몰주체적 정체성이나 보편주의에 매몰된 비주체적 정체성으로는 타자와 건강한 관계맺음을 할 수 없다. 이것은 근대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기도 하다. 즉 근대 체제가 비서구지역에 대한 억압이었지만, 비서구지역에 대한 식민지배와 착취를 토대로 서구가 문명화되었다면, 그것 자체가 그들에게도 폭력이었다. 1·2차 세계대전을 보라!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류로써 인류를 억압하지 않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비아에 대한 배제와 폭력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주체와 타자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생존을 保持하고, 보편적 이념을 구현할 수 있는 만남과 연대가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한민족 내부의 민족적 갈등 해결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는 동북아삼국의 긴장관계를 완화하는 길을 찾는 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지역의 상생과 연대를 실현하는 첩경은 팽창적 민족주의란 탐욕을 넘어서는 것이다. 신채호는 일찍이 주체성을 각오한 민중이 민중적 연대를 통해 문화적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단일보편성적 문화를 해체하고 상호존중과 비위계적 자유 평등에 기초한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였다.

부산대 박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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