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종교중국화운동과 체제 내 종교계의 반응

중국의 종교상황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지속적으로 종교자유와 관련된 국제기구의 관심대상이 되어왔다. 국제인권감시기구(Human Rights Watch)의 지속적인 압박이나 미국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의 ‘특별우려대상국’ 지정이 그 구체적인 예가 될 수 있겠다. 또한 중국의 경제적 개혁개방을 종교시장의 개방으로 이해한 외국의 종교세력들이 적극적으로 중국에 진출하여 다양한 종교스펙트럼을 형성함으로써 공산당의 중앙집권적 통치에 역기능을 하고 있는 것도 종교문제를 중시하게 된 원인이 된다.
중국내 종교인구의 급속한 증가 또한 종교관리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된다. 공식발표에 의하면 공산화 이후 종교 인구는 대략 1억 명을 넘지 않으며, 반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1950년대 4억이었던 인구가 13~14억으로 증가하는 사이에 종교인구만 1억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그 논리에 있어서나 체감되는 현실에 있어서 신뢰성을 결하고 있다. 이에 화동사범대학 연구진에서는 2005년부터 2017년에 걸쳐 종교인구에 대한 지속적인 통계조사를 실시하였고, 이를 종합하여 중국의 종교인구가 전체 중국인구의 31.4%, 그러니까 대략 3억이 넘는다는 통계결과를 내놓았다. 전체 인구의 증가율에 비추어보거나 체감되는 중국 종교의 현실을 감안해볼 때 이 결과는 상당한 신뢰성을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종교사무국의 수장인 王作安은 구체적 숫자를 집계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문혁이 종료된 이후 종교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당과 정부의 입장에서 국가이데올로기와 충돌할 수도 있는 종교인구의 급속한 증가에 대해 제도적 측면과 정신문화적 차원에서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내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신자의 구성에 있어서도 다섯 가지 많음(五多)을 특징으로 하는 기존의 상황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구체적으로 신자의 구성이 노인, 여성, 저학력, 농촌, 소수민족 위주이던 것이 청장년, 고학력, 도시, 고소득층이 우위를 점해가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위축되어 갈 것으로 예상했던 종교가 오히려 그 사회적 지배력을 높여가는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정부에서는 종교를 둘러싼 이러한 상황변화에 주목하여 종교문제의 처리를 국가대사의 하나로 중시하게 된다. 그리하여 종교에 대한 소극적 용인정책을 적극적 관리와 역할부여의 방침으로 전환하여, 종교가 사회주의 사회에 적응하여 부강한 중국의 꿈을 성취하는데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는 요구를 제기한다. 그 중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이 종교중국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종교중국화 운동과 체제내 종교계의 반응
종교중국화는 ‘종교를 사회주의사회에 적응하도록 인도하려면 종교중국화 방향을 견지해야 한다’는 시진핑의 발언을 기본명제로 삼는다. 시진핑의 이 명제는 2017년 제19차 당대회에 정식으로 보고되어 중국특색사회주의의 구체적 내용으로 자리 잡게 된다. 종교중국화는 종교가 사회주의 중국의 번영을 추동하는 유기적 역량이 되도록 인도하는 중국식 종교개혁운동을 전개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리하여 종교중국화는 사회주의핵심가치관에 상응하는 교리의 발굴과 재해석, 종교제도의 중국적 개선, 중국문화의 수용, 전파방식의 창의적 개혁 등 종교의 제반 측면에 대한 중국적 창신을 지향하는 운동이 된다. 이 중국화운동은 당과 정부가 문제를 제시하고 각 종교계에서 답을 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정답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발굴하고, 해석하고, 개선하되, 그것이 종교에 관한 당과 정부의 사상과 정책이 정확하게 반영될 수 있는 발굴, 해석, 개선이라야 하는 것이다.
교리의 발굴과 해석은 주로 종교텍스트에 대한 연구를 진행함에 있어서 그 정치적 요구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것이 종교의 사회주의사회 적응과 부강한 중국을 향한 적극적 역할수행을 인도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론으로 제시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주의핵심가치관에 의한 인도라는 원칙이 세워졌기 때문에 일차적 교리발굴과 해석작업은 사회주의핵심가치관과 통하는 어휘의 검색과 그에 상응하는 해석에 집중된다. 특히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의 부강, 민주, 문명, 조화, 자유, 평등, 공정, 법치, 애국, 근면(敬業), 성실과 신의(誠信), 선의(友善)의 12가지 어휘와 개념이 발굴과 해석의 주요 주제가 된다.
이것이 종교교리를 국가사회에 통용되는 가치관으로 전환하는 작업이므로 해석의 과잉은 필연적이다. 예를 들어 애국이라는 어휘와 개념에 상응하는 종교사상을 찾는 과정에서 불교의 국토라는 어휘를 발견한다. 그 살고 있는 땅의 은혜에 대한 보답(報國土恩)을 강조하는 불교경전의 구절이 그것이다. 해석자들은 그것이 국가체제에 대한 귀순과 애국의 임무를 설하고 있다고 이해한다. 그리하여 중국불학원 교수인 象本은 그것을 12가지 사회주의핵심가치관의 하나인 애국에 연결시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4가지 큰 은혜 중에 자기가 살고 있는 국토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항목이 있다.
그것은 그 국가를 찬양한다는 뜻으로서, 국가를 사랑하고 종교를 사랑하며, 법률의 존엄성을 지키고, 조국의 통일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중화민족의 대단결을 수호하고, 국가의 최고이익과 중화민족 전체의 이익에 복종한다는 뜻이다.
國土에 대한 감사를 바로 국가사랑으로 환치하고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國土는 그 살고 있는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지 단지 한 국가의 땅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청정국토, 불국토, 극락국토, 삼천대천세계국토, 六凡國土, 依報國土 등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니까 依報國土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듯이 국토란 한 주인공(正報)이 몸을 의지하여 기탁하고 살아가는 세계(依報)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國土恩을 국가의 은혜로 번역하는 것이 오류인가? 그렇지는 않다. 국토에 국가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오류라 할 수는 없지만 해석의 과잉을 수반하는 이러한 해석은 각 종교의 중국화 해석작업에 공통으로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종교 어휘는 그 의미의 폭이 넓다. 그 중에서 국가이데올로기에 합치되는 부분을 선택하여 그것으로 전체를 해석하는 작업이 얼마든지 가능한 이유이다. 이 밖에 어휘의 동일성, 혹은 유사성에 기초하여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나 해석의 근거를 세우기 위해 번역어를 바꾸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그것을 일일이 살펴보고 분석하는 일은 본격적 연구과제로 미루기로 하고 화해와 관련된 교리발굴 및 해석 작업에 대해 간략히 살펴봄으로써 그 전모파악의 일단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원래 사회주의핵심가치관에 의해 종교사상을 해석하라는 지침이 세워지기 전에도 종교중국화의 움직임이 있었고 그 중 화해는 교리발굴작업의 주된 주제의 하나였다. 그러니까 2004년 제16차 당대회 4중전회에서 ‘사회주의 화해사회의 건설’이라는 구상이 제시되어 이에 대한 종교적 교리발굴이 진행되어왔던 것이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화해, 인간과 자연의 화해, 신과 인간의 화해를 포함하는 대대적인 발굴사업이자 새로운 사상의 수립운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에 적극 참여한 불교와 도교의 교리해석례를 다시 들 필요는 없거니와, 비교적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기독교와 이슬람의 경우를 통해 그 성격의 일단을 짚어보고자 한다. 『성경』에서 화해의 교리를 찾고자 했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구절을 찾아내어 그에 대한 새로운 번역과 해석을 내놓는다.
복되도다! 和睦(평화)을 이루는 사람들이여,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릴 것이다.(마태복음 5:9)

형제들이여, 기뻐하십시오. 온전하게 되기를 힘쓰십시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和睦(화평)하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고린도후서 13:11)
여기에서 和睦은 히브리어의 샬롬, 영어의 peace를 번역한 말로서 한국어로 평화, 평강, 혹은 화평으로 번역된다. 중국어 번역자도 이것을 직역하면 평화, 혹은 화평이 되어야 한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왜 이것을 和睦으로 번역한 것인가? 평화는 하나님과 개인, 혹은 하나님과 민족의 관계복원과 일치화로 얻어지는 것이다. 이에 비해 화목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 안에서의 평화와 사람간의 화목은 상호 연결된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평화가 사람간의 화목으로 구현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합과 하나됨을 특징으로 하는데 예수는 이것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마 18:20)고 표현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는 제자들의 ‘평강’을 축복하며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도록 한다. 이 일로 예수의 제자들은 인종의 장벽, 계층의 장벽, 종교의 장벽, 정치의 장벽이 무너진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점에서 샬롬(Peace)을 화목의 개념으로 해석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평화는 사람 간의 화목보다 큰 개념이고 상위 개념이다. 화목의 측면에서 평화를 해석할 수는 있어도 아예 번역을 그렇게 하는 것은 원전의 뜻을 손상시키는 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위 『고린도후서』의 경우, 화평을 화목으로 번역하다 보니 원문에 없는 서로(彼此)가 더해져 ‘서로 간에 화목해야 합니다(要彼此和睦)’와 같이 새로운 문장을 만들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번역과 해석은 분명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신학을 윤리화함으로써 국가이데올로기와 호응하도록 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중국화된 번역 및 해석들이 객관적 정리와 분석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있다.
이슬람교의 화해와 관련된 교리발굴 및 해석작업 역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슬람교의 종교사상에 대한 중국식 해석은 解經으로 불리는데 사회주의핵심가치관의 각 항목을 적용한 해경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선 화해와 관련된 해경작업 중 다음과 같은 중도사상을 적용한 『꾸란』의 번역과 해석이 있다.
나는 이처럼 너희를 中正民族이 되도록 하였다. 너희들이 세상의 증거가 되도록 함이며, 사자가 너희의 증거가 되도록 함이니라.
여기 中正은 “وسطا”의 번역어로서 번역자에 따라 中道(王靜齋), 公允正派(林松), 中庸(全道章) 등으로 번역된다. 中正은 이슬람 학자 馬堅의 번역이다. 이 어휘의 원래 뜻은 중간의 길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번역어인 中道와 中庸 등은 초기불교번역에서 창안된 格義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어 번역도 中庸으로 되어 있다. 동일문화권에 속하던 시기에 익숙해진 용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어 번역본과 대조하면 더 중요한 차이가 발견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너희를 위해 중용의 한 공동체를 선택하여 주셨으니 너희는 그 공동체의 증인이 될 것이며 선지자도 너희들을 위한 한 증인이 될 것이라.
한국어로는 공동체로 번역된 부분이 중국어로는 民族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그 전에 향했던 기도의 방향을 지정하셨나니 이는 선지자를 따르는 자와 따르지 않는 자를 구별하고자 함이라’라는 문장과 함께 보면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러니까 이들은 선지자를 따르는 집단이다. 알라를 신봉하고 무함마드를 따르는 집단을 가리키는 말로서 공동체로 번역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중국의 번역자들은 民族으로 옮긴 것이다. 민족분열주의적 활동이 우려되는 이슬람사회에 대한 사상적 순화의 의도가 반영되었기 때문이고, 사회주의핵심가치관에서 제시한 바, 민주, 문명, 조화, 평등, 공정 등의 화해정신과 두루 통하는 길이라 보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종교를 애국주의로 순치하기 위한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 각 종교의 고유한 계율과 의궤를 유지하되 현대생활에 어울리는 관리조직과 제도를 수립한다는 관점에서 제도적 개선운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불교사적으로 馬祖가 수행공동체의 도량을 설립한 일, 百丈이 소승의 계율주의를 뛰어넘어 선원 특유의 淸規를 마련한 일이 그 하나의 모델로 제시된다. 실제로 현대 불교계에서는 그 역사적 경험에 기초하여 수행과 포교를 통일한 새로운 승단의 모델 수립, 신앙+교육+문화+자선+국제교류를 통일한 다기능 신행도량의 건설, 사찰의 오프라인 공간과 인터넷 온라인 공간을 결합한 포교기구, 불학공부모임과 자원단체를 결합한 신도회 건설 등에 있어서 타종교의 모델이 될 만한 성과를 내놓고 있다. 이것이 각 종교의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는 것이다.
종교중국화 운동은 분명히 정치적 압박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것이 보신용 반응이기만 한 것 같지는 않다. 종교적으로 심화된 고민과 실천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와 시대의 요구에 대해 종교는 내적 본질을 유지하면서 외적 형식을 혁신하는 방식으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럼에도 현대 종교의 대응은 흡족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현대사회와 개인의 정신적 위기를 해소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주는 활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록 강제성을 띄고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종교의 중국화운동에는 종교의 역할수행에 대한 시대적 고민과 모색이 담길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또한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1) 세계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종교화 추세가 이를 반증한다. 실제로 2012년 미국의 갤럽인터네셔널에서는 10년 전에 비해 종교인이 9% 감소하고, 무신론자가 3% 증가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의 경우,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무종교인이 56.1%에 달해 처음으로 신앙인을 넘어섰다. 이것은 전반적으로 세계적 추세와 비슷하다. 나아가 종교신앙의 실제현실은 이 조사와 통계수치를 훨씬 상회하는 냉각속도를 보이고 있다.

동의대 중국어학과 강경구

페이스북 트위터 인쇄하기 링크복사하기

우) 47011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로47 동서대학교 어문관 7층   |  TEL : 051)320-2950~2
Copyright © 2018 webzine.dsuchina.kr All Rights Reserved. Design by INT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