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화 깊이 읽기

1) 달나라 원주인은 토끼일까? 두꺼비일까?
신화는 단지 고대인의 허구적 상상의 결과물, 괴이한 고사 또는 한낱 소소한 이야깃거리만은 아니다. 현실 생활의 바탕 하에 풍부한 상상력과 예지력을 가미하여 만든 당시 고대인의 사상, 가치관, 과학, 의술, 종교, 문화가 함축된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화 속에는 고대인의 깊은 사유방식과 비전이 담겨있다. 신화는 고대문명의 보물창고를 여는 열쇠라고 비유할 수 있다. 여기서는 신화의 문저(文底)에 흐르는 원초적 의미를 읽어보고, 시원적 모습과 변형된 이야기 사이의 간극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달나라 토끼 고사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우리가 잘 아는 달 관련 동요에는 “푸른 하늘 은하수… 계수나무… 토끼 한 마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달 속에는 토끼가 살며, 계수나무 아래서 절구를 찧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진(晋) 부현의 시에는 “달 속에 무엇이 있는가, 흰 토끼가 약을 찧고 있네.(月中何有, 白兎搗藥.)”라는 문구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왜 수많은 동물 중에 토끼가 달의 주인이 되었을까? 그리고 토끼는 왜 우리가 상상해오던 곡식이 아닌 약을 찧고 있는 것일까? 태양에는 태양조인 삼족오가 있어서 태양을 싣고 하늘을 난다는 이야기는 그런대로 이해가 되지만, 달 속에서 토끼가 약을 찧는다는 고사의 연유는 알기가 어렵다.
결론적으로 신화적 시각에서 보면 토끼와 달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즉 신화의 정신이 사라진 변형 고사를 우리는 원형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토끼와 계수나무, 방아 찧기 등이 담긴 변형 고사와 원래의 신화 이야기는 구분되어야 한다.
사실 중국 신화에는 달에 관한 또 다른 고사가 전해지고 있다. 『회남자』 「남명훈」에 보면 “예가 서왕모로부터 불사약을 청하였는데, (예의 부인인) 항아가 몰래 훔쳐 달로 달아났다.(羿請不死之藥于西王母, 姮娥竊以奔月.)”는 항아분월(姮娥奔月) 내용이 나온다. 이후 달로 간 항아가 두꺼비(蟾蜍)로 변하고 약을 빻는다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 한대 화상석 항아분월
서관한묘(西關漢墓)의 화상석과 서한 마왕퇴(馬王堆) 1호 한묘에서 출토된 벽화 그림에 모두 달 속 두꺼비가 그려져 있는데, 여성인 항아가 불사약을 훔쳐 달로 도망가서 월정(月精)인 두꺼비가 된다는 고사와 합치된다.
그러면 왜 여성 항아가 굳이 멀미약이나 설사약도 아닌 불사약을 복용하고, 북두칠성도 아닌 달(月宮)로 도망을 갔을까? 그리고 왜 두꺼비로 변해야만 했을까?
신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달의 여성원리와 여성 항아의 연결고리가 보인다. 불사약은 차고지는 순환을 통해 생사 반복하는 달의 영원한 생명성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장수하고픈 갈망이 반영된 상징물로 볼 수 있다.
두꺼비로 화했다는 모티프는 원형회귀 관점에서 보면 원래의 토템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두꺼비와 달은 생식원리 관점에서도 연결이 된다. 여성원리로서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달과 은 민족의 생식숭배 대상이자 노동력이 요구되는 고대사회에서 다산의 상징이 되는 개구리(두꺼비와 같은 부류)가 결합된 것이다.
따라서 항아가 달로 도망간 후 두꺼비로 변했다는 고사는 신화적 이치에 부합하는 원형 고사로 볼 수 있고, 토끼나 은하수, 계수나무 그리고 절구로 곡식을 빻는 행위는 후에 등장한 변형 고사로 볼 수 있다. 결국 달나라 원주인 자격은 토끼가 아닌 두꺼비에게 있다고 봄이 옳다.
시원적 신화는 단순히 황당하고 허구적인 이야기가 아닌 고대인의 깊은 사유방식을 담고 있다. 반면 변형된 고사는 본래의 고대 사상은 소멸되고 오락적 요소가 첨가되어 있다. 고대인의 사유방식이 함축된 원형 신화와 이후 변형되거나 재구성된 고사 사이에는 이처럼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인식했으면 한다.
2) 신화와 역사
신화는 역사가 아니지만, 그 속에는 일부 역사적 잔재가 어렴풋이 남아있다. 신화는 역사왜곡을 감시할 수 있는 오염되지 않은 증거자료로서 활용되기도 하고, 신화 간 동질성을 통해 민족 간 친연성 여부도 확인할 수 있는 도구도 된다.
신화인물 황제는 화하계인 한족 시조로서 『사기』를 통해 중국역사 속으로 들어왔고, 묘만계의 시조로 숭앙받는 치우는 기이하고 포악한 비극인물로서 전해져오고 있다. 그럼 우선 서방 화하계 리더 황제와 동방 동이와 묘만계 리더 치우의 전쟁 고사 속에서 과거의 역사에 대한 진실을 알아보자.
치우가 무기를 만들어 황제를 벌하자, 황제가 이에 기주의 들에서 그를 공격하게 하였다. 응룡이 물을 모았지만, 치우는 풍백과 우사를 시켜 큰 폭풍우를 만들었다. 황제가 이에 천녀인 발을 내려 보내 비를 멈추게 하고 드디어 치우를 죽였다.
蚩尤作兵伐黃帝, 黃帝乃令應龍攻之冀州之野. 應龍畜水, 蚩尤請風伯雨師, 縱大風雨. 黃帝乃下天女曰魃, 雨止, 遂殺蚩尤. (『산해경』 「대황북경」)
황제와 치우가 탁록의 들에서 싸우는데, 치우가 큰 안개를 삼일 간 일으키자 군인들이 모두 미혹되었다.
黃帝與蚩尤戰於涿 鹿之野, 蚩尤作大霧彌三日, 軍人皆惑. (『태평어람』)
황제와 치우가 싸운 곳은 기주(冀州)의 들이다. 지금의 하북(河北) 지방으로서 범 중원지역이다. 옛 중원지역은 수천 년간 동이계와 화하계 민족들이 서로 연극무대처럼 번갈아 점유하면서 영향을 미쳐왔던 곳이다. 황제가 치우를 벌하러 멀리 변방으로 가서 싸운 것이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역에서 전쟁을 치른 것이다. 이는 당시 동방의 치우계가 중원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며 활약하였음을 말해준다.
  • 치우 형상
치우가 황제를 벌한다는 이야기 속 ‘벌(伐)’이라는 글자는 일반적으로 상대가 잘못했을 경우 공격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반면 ‘침(侵)’이라는 글자는 법과 규칙에서 벗어나 의롭지 않게 상대를 공격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즉 치우가 악한 인물이고 황제가 선한 인물이라면 ‘침’이라는 글자를 사용했음이 마땅한데, 여기서는 ‘벌’이라는 글자를 사용하고 있다. 벌은 황제가 정의이고 치우가 불의라는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반증하는 말이다. 다만 치우가 여러 차례 승리하였지만 최후에 패함으로써 포악한 비극영웅으로 전락하게 되고 후세에 그러한 이미지가 고착된 것이다.
이처럼 왜곡되지 않은 시원의 원형 신화에 대한 탐색을 통해 고대 역사의 면모를 일부 추적할 수 있고 역사왜곡을 일부 바로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화가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울산대학교 중국어중국학과 이인택

페이스북 트위터 인쇄하기 링크복사하기

우) 47011 부산광역시 사상구 주례로47 동서대학교 어문관 7층   |  TEL : 051)320-2950~2
Copyright © 2018 webzine.dsuchina.kr All Rights Reserved. Design by INT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