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관계 전망 및 대중외교의 방향성

시진핑 주석의 연내 한국 방문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한중관계 복원에 대한 각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미 간 교착상태 및 북한의 대남채널 봉쇄로 인해 축소된 우리의 현 입지 그리고 꽉 막힌 비핵화 경색 국면을 타결하기 위한 한중협력의 중요성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시주석은 왜 한국을 방문하는가? 우리는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전 세계적으로 미중관계의 탈동조화(decoupling)가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의 대중외교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치열한 고뇌와 참신한 행동이 필요하다.
치열한 미중 패권다툼 속 중국의 셈법
21세기 미중 간 패권 다툼은 과거 사례와 비교해 질적으로 다르다. 중국 하나의 규모만도 과거 유럽을 제패한 로마제국(Pax Romana)보다 더 크다. 그런 중국과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 세계 오대양 육대주를 대상으로 패권체제를 확립한 미국 간의 세력경쟁이다. 또한 4차 산업시기 양국 간 경쟁분야는 인류의 삶의 패턴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최첨단 기술을 포함한 제도, 가치관, 표준 등을 망라한다. 더욱이 과거와 구분되는 이질적 문명과 인종 및 이데올로기적 대립의 성격까지 띤다는 점에서 오늘날 미중 간 세력경쟁의 파장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문제는 미중관계 여하가 한반도에 직접적으로 투영된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한반도 외교는 철저히 대미외교의 하위에 속한다. 중국은 과거 한국전쟁시 미국에 대항(抗美)한다는 논리로 참전하면서 정작 영토의 주체인 한국은 열외로 취급했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태까지 연결된다. 자국 안보에 치명상을 입힐 미국의 무기를 한국이 배치했다는 비분강개함이 중국 전역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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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무역전쟁을 계기로 강렬하게 표출된 미중 마찰 및 경쟁구도로 인해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과거보다 더욱 대미정책에 종속되고 있다. 글로벌 저성장 시기 공산당 집권의 정당성을 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정이 미국을 필두로 한 서구사회의 배척, 국내 경제성장 부진, 홍콩시위와 대만 선거 등 민족통일 비전의 차질, 주변국들의 대중국 인식 악화 등 대내외적 과제에 동시 직면하면서 시진핑 정부는 현재 사활을 건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은 ‘새로운 주변관계(新型周邊關係)’에 주목하면서 “사드는 한국의 잘못”이라던 입장을 “사드는 미국이 만든 문제”로 전환했다. 때마침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한미일 협력구도 약화, 주한미군 분담금 문제로 인한 한국내 대미불만 점증 등도 중국의 태도 변화를 촉진했다. 한국과 협력함으로써 최소한 반중전선에 서지 않게 통제하고 ‘중국 패싱론’ 등 입지가 줄어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자신의 목소리를 키워 한반도의 미래가 미국의 이익대로 흘러가지 않게 조정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의 접촉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를 비난했지만 사실상 국제사회에서 ‘신냉전’, ‘미중 패권전쟁’등의 담론이 확산되는 것은 경계한다. 그런 중국에게 ‘한반도 비핵화 과정에서의 긍정적 역할은 미국의 거센 압박을 완화하고 타협을 끌어낼 중요한 정책적 수단’임을 상기시켜야 한다. 과거 닉슨과 모택동이 한반도 이슈를 양국 간 갈등이 아닌 협력의 공간으로 상정하며 미중 데땅트라는 자국 이익을 추구했던 것처럼, 한국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미중 간 갈등이 아닌 협력이 극대화되어 평화과정이 추동될 수 있도록 치열한 외교전을 펼쳐야 한다.
중국과 윈윈을 창출하려면
주지하듯 한반도 이슈에서 미중 간 공동이익은 ‘비핵화’이다. 한국은 중국에게 북한의 핵보유 욕구와 가능성을 차단하는 중국의 실제 역할이 미국과의 전면적 갈등구도 대처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끔 설득하고 실제 그런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대미외교에 힘써야 한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 정세가 급변했던 시점을 복기해보자. 북한이 왜 장기간 의존했던 벼랑 끝 전술을 버리고 대화의 길로 나섰는가? 우선 최강대국 미국의 대북기조가 ‘전략적 인내’에서 ‘최고의 압박과 관여’로 전환된 사실이다. 여기에 북한의 오랜 뒷마당 역할로 피로감이 극대화된 중국이 대북제재에 실제 참여했다. 현실주의 관점에서 북한 같은 작은 최빈국이 전 세계 두 슈퍼파워의 군사적·경제적 동시 압박을 배겨내기란 불가능하다. 즉 북핵문제 해결을 우선순위에 올리고 군사옵션을 포함한 초강경 압박의지를 표명한 미국, 그리고 북한을 전략적 자산이 아닌 부담으로 보고 거리를 둔 중국의 행보가 김정은 정권의 숨통을 실제로 조였고 결과적으로 한국에게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기회를 제공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중국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 여부가 한반도 정세에 미칠 한국의 외교역량 및 전략적 공간 확보에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게 만들려면 현실적으로 한국에 대한 중국의 신뢰도를 높여줘야 가능하다. 중국이 제재해제 등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며 자기 품안에 두려는 것은 한반도 전체가 미국 영향권에 편입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관계가 심화될수록 중국은 북한의 핵보다 미래의 친미적 통일 한반도가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다. 사실상 중국은 한국 주도하 통일이 되더라도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대중국 봉쇄기지가 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원한다. 이것이 바로 왕이 국무위원이 한중관계에 대한 첫 번째 희망사항으로 언급한 “수준 높은 정치적 상호 신뢰 구축”의 요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상당히 정교한 대중외교의 설계가 필요함을 뜻한다. 작년 말 북한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의 대화 제안 거부, 자위적 국방력 강화 결의 등은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뒷마당으로 복원해 외교력을 장착했기에 가능했다. 한국이 명확한 로드맵 없이 중국을 끌어들이는 것은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중국에게 넘겨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대중외교의 핵심은 중국이 최후의 순간 북한이 아닌 한국을 선택하도록 만드는데 놓여야 한다. 즉 북한도 중요하지만 ‘한국과의 신뢰 및 협력 강화가 대미 투쟁을 포함하여 공산당 집권 안정에 긴요한 중국의 꿈(中國夢) 실현에 더욱 도움이 된다’고 여기도록 만들어 나아갈 수 있느냐이다. 한중 간 신뢰에 중국의 대북 압박이 더해지면 북한의 운신공간은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때 비로소 통일의 대상자이자 경쟁자인 북한의 불안감을 완화시키고 민족번영의 길로 인도할 우리의 대북 친선정책이 빛을 발할 수 있다.
단호한 선택과 교묘한 헤징 사이
이는 우리에게 매우 복잡한 고차 방정식을 요구한다. 한국은 향후 미중 간 전략적 불신에서 비롯될 사드 유사 사태, 그리고 4차 산업혁명기 최첨단기술 분야의 미중 간 표준 및 글로벌 가치사슬체계 경쟁에서의 선택, 이 외에도 남중국해 미군 주도 군사훈련 참여 여부 등 다양한 난제에 부딪힐 전망이다. 원칙은 한국의 국가경쟁력에 유리한 선택을 하되 안보영역에서 미중 간 대립의 장(場)에 연루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더욱 치열해질 미중 세력경쟁 판도에서 한국이 군사적 대중 압박 및 봉쇄기지가 되지 않는다는 카드를 가지고 중국의 대북 압박 및 우리에게 필요한 역할을 하도록 유인함으로써 북한의 실질적인 추가 비핵화 조치를 끌어내고 종국적으로 제재가 해제되는 수순이 바람직하다.
아울러 우리와 유사한 입장에 놓여있는 아세안 국가들을 대상으로 한국 외교의 튼튼한 제3지대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미중 간 세력경쟁이 심화되어 타국의 선택을 강요하고 역내 평화를 저해할 경우 그것의 부당성을 함께 지적하며 연대하는 국가 간 연합체 창설을 한국이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혹시 있을 중국의 부당한 압박에도 공동 저항할 힘으로 연결된다.
이 외에도 신북방정책과 일대일로의 연결시 동북삼성 지역과 기타 지역을 분리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자의 경우 북한지역에 대한 주도권을 우리가 갖기 위해선 단순히 경제적 관점뿐 아니라 외교, 군사, 산업 등 다방면을 통합한 지전략(지정학+지경학)적 사고와 접근이 필요하다. 통일 한반도의 안보 요충지에 중국의 영향력을 배제할 지략, 동북지역에 포진해있고 북한과 친숙한 조선족 기업인들을 한민족 공동체로 묶어 민족번영에 일익을 담당토록 유도할 제도와 여건 마련, 그리고 한반도 통일과 동북삼성 진흥 간 선순환 담론 제작 및 선전 등 수많은 과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서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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