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신경제구상과 남북경협

남북한을 둘러싼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연이은 북-미 싱가폴 정상회담에서 남북한과 북-미 정상간에 합의문이 도출됐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큰 문제들을 다뤘다. 당초 기대와는 달리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합의들이 하나둘씩 이행되고 있다.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 또한 분위기 변화에 맞춰 높아지고 있다. 남북경협 수혜 기업들의 주가는 등락하고, 10여년 만에 재개될 경협에 대한 관심은 점차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시절이던 2014년에 이미 ‘신한반도 경제지도’를 주창해 왔다. 그리고 2017년 7월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 베를린 구상을 내놨다. 이 연설의 근간은 신한반도 경제구상이다.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근본적으로 전환시켜 남북한이 함께 경제적 번영을 누리자는 내용이다. 신한반도 경제구상은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몇 가지의 근본적 차이가 있다. 이 점을 정확히 인지해야 향후 경협에 대한 전망이 가능해 진다.
첫째, 평화를 우선한다. 과거 정책의 경제교류는 북한을 변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북한의 비핵화, 정전협정 그리고 평화협정의 궤도는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는 작업이다. 1991.12월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2000.6월 1차 남북정상회담, 2007.10월 2차 남북정상회담 등을 통해 지난 30년 가까이 남북한은 관계개선을 추구해 왔다.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전이 없었던 이유는 결국 평화의 부재 때문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평화 이전에 남북경협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둘째는 상생이다. 과거에는 변화를 거부하는 북한을 전제하고 반 강제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지금은 북한 스스로 변화를 하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이를 지원하면서 이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 이후 한국경제는 3면이 바다이고 한 면은 절벽인 섬나라 아닌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환경에서 성장 발전해 왔다. 북한이 스스로 문을 열면 한국은 더 이상 섬나라가 아니며 대륙과 연결하는 거대한 시장을 겨냥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경제는 기초를 다지고 경제성장을 이어가게 된다. 북한을 억지로 변화시켜 강제로 통합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북한 경제의 자생력을 강화하며, 북한이 자체적으로 경제발전을 구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지게 된다.
셋째는 동북아의 경제공동체를 지향한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남북한만의 경협을 넘어 동북아 지역 발전을 도모한다. 북한은 동북아 지역의 블랙홀이었다. 동북아 국가들의 경제력과 경제체제의 차이로 인해 경제공동체를 꿈꾸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북한이라는 블랙홀로 인해 서로의 협력을 시도하기도 어려웠다. 한반도 신경제구상은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시발점을 한반도에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남북한의 8천만 시장을 넘어 동북아 5억 이상의 거대시장을 꿈꾼다. EU경제공동체는 동서독 분단 이후 서독의 아데나워 정부가 석탄철강공동체를 내세워 서방국들과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됐다. 독일 통일과 함께 유럽통합은 가속화됐고, 결국 유럽통합의 중심에 통일 독일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내부적으로 경제정책의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지난 50여년 동안 북한 경제의 근간을 이루던 사회주의 계획경제, 군산복합체, 자력갱생의 세 가지 기둥에 변화가 일고 있다. 농업부문의 포전 담당제와 공업 부문의 사회주의기업경역책임제는 협동적 소유 방식을 지향한다. 시장도 공식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일종의 시장개혁이 시작되고 있다. 북한은 이미 5개의 경제특구와 22개의 경제개발구를 지정한 상태다. 외부 자본의 유입을 위한 개방을 실시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북한시장의 투명성 부족으로 자본유입은 안되고 있지만, 내부적 준비는 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이 대미관계 개선에 주력하는 이유를 경제적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은 개혁개방을 위한 외부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인 셈이다.
  • 사진출처: IBK경제연구소, LH남북협력처
따라서 남북경협은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10여 년전의 경협 방식으로는 새로운 변화를 담아내기 어렵다. 과거의 방식으로 한반도에 국한된 남북경협을 구상한다면 여전히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제한적 경협에 머물 수밖에 없다. 아직 경협을 추진할 만한 상황, 즉 평화의 틀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대북제재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경협을 실시할 수 있는 상황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과거 책상 안에서 잠자고 있던 방안들을 다시 재구성하는 수준의 준비로는 변화될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
우선 남북 간에는 경제운영 방식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점을 서로가 인정해야 한다. 북한이 하루아침에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남한은 북한의 시장경제 도입을 강요할 수만도 없다. 서로 다른 체제 간에 원활한 경제교류를 가능케 하는 완충 장치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남북 간에는 이러한 문제에 원칙적 합의를 보았지만,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남북간 교류와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재조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든다면 남북간에 종전선언과 평화선언을 하게 되면 종전의 내국간 거래를 지속할 수 있을지 판단을 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에만 유리한 교역 조건을 허용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경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남북한의 내국간 거래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협정 체결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경제교류에는 자본의 이동이 필수적이다. 금융거래 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초기 남북경제교류는 무역과 임가공 사업이 중심이 되겠지만, 대금결제를 위한 은행간 신용장 개설이 안되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달러기준으로 결제를 할 때 북한의 시장환율로 할지, 공식환율로 할지도 정해야 한다. 양 환율의 차이가 80배 이상 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적교류를 위해 초청장 발급은 어떻게 할 것인지, 비자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기존과 같이 북한의 민경련이나 민화협을 통해야만 교류할 수 있는 것인지 등등에 대한 재협의가 필요하다. 이렇듯 지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일부터 우선해야 한다.
새로운 환경의 경협은 한반도에만 국한되는 사업을 넘어 동북아로 확장하는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 북한의 개방을 동북아 협력의 플랫폼으로 만들고, 북한 개발은 일종의 동북아 및 세계 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 있도록 연계하는 역할을 한국이 하는 것이다.
남북간에 사전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철도협력 사업을 예를 들어보자. 현실적으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아직도 진행 중이기 때문에 제재가 완화되어야 사실상 동해선과 서해선을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따라서 사전 조사 작업을 충실히 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동해선의 경우 한국도 제진과 강릉 구간이 미 연결 상태이기 때문에 이 구간을 연결하는 작업부터 시작할 수는 있다. 특히 남북한 철도 연결 사업은 10년 전에도 그랬듯이 남북한 연결사업의 가장 상징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시작된다. 경제제재가 완화되고 북한의 철도 개량사업이 진행될 경우 철도부지에 러시아 가스관을 매설하는 작업을 병행할 수 있다. 철도 연결사업과 연관된 전후방 연관효과는 남북한 경제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거대사업임은 분명하다. 철도는 4~500km 정도의 단거리를 연결하는 것보다 1,000km 이상 장거리를 연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철도 전문가들은 말한다. 남북한은 분단으로 인해 철도의 실질적인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남한이 철도보다는 도로 중심의 수송시스템을 갖춘 이유다.
남북한의 철도 연결은 한반도의 철도가 유라시아 횡단철도와 연결되어 유럽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마침 남한은 지난 2018년 6월 7일 북한의 협조를 얻어 국제철도협력기구 정회원으로 가입함에 따라 유라시아 열차 노선 운영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유라시아 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은 이미 조성된 상태다. 철도의 연결은 국경을 넘는 산업 클러스터를 형성할 수 있게 한다. 특히 한반도 동해안 지역은 서해안에 비해 지형의 특성상 산업입지가 열악한 편이지만 지하자원이 풍부한 북한의 단천지구와 연결하여 철강 산업 등의 클러스터를 형성할 수 있다. 해안과 산악지역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풍부한 천연 관광자원은 수송수단의 발달로 주목받을 수 있다. 동계올림픽이 개최됐던 평창과 설악산, 금강산과 마식령을 연계하는 남북한 공동의 관광지역 개발도 활기를 띨 수 있다.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 3국의 국경이 한 곳에서 만나는 두만강 하구는 천혜의 관광지로 부상할 수 있다. 러시아 가스관 연결은 관련 산업들의 발달을 부추길 것이다. 북한의 노후한 철로를 회수하여 재활용하는 사업도 주목된다. 물류비용 등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북한 철로의 대부분을 교체해야 한다고 가정할 때 흥미로운 사업기회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북한의 중형 제철공장의 용광로를 활용하는 사업들도 활기를 띨 수 있다. 철도 침목을 공급하는 일도 좋은 비즈니스가 될 것이다. 과거에는 나무 침목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시멘트 침목을 사용하므로 현지 입지형 침목 생산도 고려해 볼 만하다. 시멘트 산업의 특성상 원료 입지형에 전기공급이 원활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기공급과도 연계되는 사업이다. 철도 차량을 북한에서는 ‘빵통’이라고 하는데 일단 북한에 들어간 차량은 다시 나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철도 차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사업성이 있어 보인다. 특히 국제열차로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물류가 활성화될 경우 철도 차량 수요는 크게 늘어날 것이다. 그 밖에 신호 체계, 각종 설비 등을 공급하는 사업들도 활기를 띨 수 있다. 이렇듯 남북한의 철도 연결은 단순히 운송수단을 연결하는 차원을 넘어 남북한 경제관련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은 단순히 남북한 협력에 그쳐서는 안된다. 철도 연결은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사업이다. 유럽의 통합이 가능했던 것은 오래전부터 진행된 철도 연결 사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한국은 분단으로 인해 70여 년간 섬나라였으며 지금도 섬나라다. 남북한 철도 연결은 섬나라에서 대륙국가로 전환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따라서 이 사업에는 동북아 지역의 관련국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한만을 연결하는 철도가 아니라 그 철도를 이용할 국가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공유해야 한다. 일본을 비롯해서 중국, 러시아도 참여해야 하는 이유다. 북한 철도 현황을 사전 조사하는데 이들 국가들의 전문가들도 함께 참여하며 북한의 현실에 맞게 다양한 국제공동(동북아 지역 공동) 프로젝트를 만들어 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물론 이제 중국과 러시아도 참여할 수 있는 자본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의 자본도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서 동북아 공동체는 폐쇄적 공동체가 아니라 열린 플랫폼 공동체라는 이미지를 정착시켜야 한다. 북한 개발을 동북아의 특정 국가들이 떠 앉는 부담으로 만들지 말고, 동북아 국가들이 공동 번영할 수 있는 기회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것이 동북아 공동체를 위한 남북한 철도 연결사업의 방향성이다.
향후의 남북경협은 북한개발을 통한 동북아 지역협력의 장을 만드는 작업이 돼야 하며, 이는 남북한의 8천만 시장을 넘어 동북아의 5억 이상의 시장을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게 될 것이다.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굿파머스 연구소장 동용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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