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영화 연구의 신경향:‘중국전영학파’에 대한 한 단상

지난 10월 12일과 13일, 이틀간 북경전영학원에서 ‘국제적 시야에서 바라보는 중국 영화와 중국 영화 연구 학술 포럼(国际视野下的中国电影与中国电影研究学术论坛)’이 개최되었다.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등지의 저명한 영화 연구자들과 중국내 십여 개 대학에서 활발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연구자들이 한데 모인 이번 포럼은 비록 규모에서의 거대함은 있으나 얼핏 보아 중국에서 종종 열리곤 하는 여타 ‘국제 학술 회의’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포럼 개회식에서 개회사를 맡은 허우광밍(侯光明, 북경전영학원 교수, 북경전영학원 당위원회 서기)의 연설이 이번 포럼을 기존의 ‘국제 학술 회의’와 구분 짓는다.
통상 중국에서 열리는 영화 관련 학술 대회 개회식에서 중국 영화의 양적, 질적 성장을 강조하고, 연구자들 간의 학술 교류와 진일보한 연구 수준 제고를 기원하는 내용의 연설이 행해지는 게 상례이나, 이번 포럼에서는 이에 더해 ‘중국전영학파(中国电影学派)’가 중심 화제로서 등장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간, 중국의 각 학문 분과에서 ‘중국학파(中国学派)’라는 개념이 빈번히 회자되기 시작했다. 영어로 ‘the Chinese School(s)’로 번역 가능할 이 개념은 흔히 ‘영미학계(the English School)’로 일괄 지칭되곤 하던 ‘서구학계’에 대한 중국의 응수라 할 것으로, ‘중국의 입장에서 출발하여, 중국의 언설을 표현 수단으로 삼고, 중국의 실제 문제를 연구할 것’을 기본 정신으로 삼는 학문 연구 입장이다. ‘영화학의 중국학파’라고도 불리는 ‘중국전영학파’ 역시 이러한 입장을 공유하는 것으로, 창작, 이론/비평, 교육 제 분야에 걸쳐 중국 영화의 중국적 예술 형식, 미학, 중국적 제재, 중국의 주체성 등을 규명하고 전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 자료출처: 중국소후망
그러므로 허우광밍의 이번 포럼 개최사에서 언급된 ‘중국전영학파’는 이러한 최근 중국내 학계에서 이는 ‘중국 입장에서의 학문 체계 수립’ 움직임에 대한 중국 영화학계의 호응이라 할 것이다. 2017년 10월 31일, 중국의 영화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 북경전영학원에 ‘중국에서 기원하고, 중국을 체현하며, 중국을 대표한다(来自中国, 体现中国, 代表中国)’를 모토로 하는 중국전영학파의 중심지로서 ‘중국전영학파연구부’가 신설되었고, 북경전영학원을 비롯한 중국의 여러 대학들, 연구소 등지에서 중국 영화의 ‘중국(성)’을 화두로 하는 연구 프로젝트들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는 종래의, 그리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학문 연구에서의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서구 국가의 이의 제기라고도 할 수 있으며, 일찍이 80년대 중반부터 국제정치학 분야에서 미국 중심의 국제정치학에 대해 중국 내에서 일었던 비판과도 궤를 같이 하니 딱히 새로운 경향이라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오히려 90년대 영미권에서 화인 연구자들이 지역학의 속박을 벗어나 각자의 학문 분과에서 중국의 자리를 확보하고자 했던 일련의 노력들을 떠올려 볼 때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례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비교문학, 중국 영화 연구자 장잉진은 1999년 『민국시기 상하이 영화와 도시 문화(Cinema and Urban Culture in Shanghai, 1922-1943)』와 2004년 『차이니즈 내셔널 시네마(Chinese National Cinema)』를 펴내면서, 8,90년대 영미권에서 중국 영화 연구와 관련해 존재하던 ‘모종의 불균형’을 교정하고 싶었던 마음이 출판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다.1) 중국 영화가 제5세대 연구에만 편중되고, 마치 제5세대 이전에는 중국에 영화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의 무지와 오해, 영화학이 아니라 지역학 안에서 중국 영화가 논의되고 있던 당시 상황에 대항해 영화학 분과(discipline) 안에 중국 영화의 자리를 마련키 위한 해결책으로 장잉진이 우선 주목한 것은 중국 영화사였다. 즉 영화사 사료 정리, 서술을 통해 프랑스, 독일, 미국(할리우드) 못지 않은 오랜 영화의 역사와 무수한 작품들이 존재함을 알림으로써, ‘저들’과 나란히 논의될 수 있는(즉 충분히 영화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일국의 내셔널 시네마로서 중국 영화의 위상을 정립하고자 한 것이다.2) 연구 주체, 연구 대상에서 주로 유럽과 미국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영화학이라는 하나의 학문 체계 안에서 ‘비서구 영화 연구라는 주변부의 중심’3)으로나마 중국 영화를 자리잡게 한 이러한 시도와 비교하면, 중국 영화를 주제로 곳곳에서 대형 학술 회의가 개최되고 중국이 세계 제2의 영화 시장으로서 양적 팽창을 이룬 지금의 상황은 격세지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렇듯 달라진 시대 상황을 목도하며 감상에 빠지기 전에, 이러한 ‘비서구의 영화’가 기존의 공고한 서구중심적 학문 체계에 대항하는 형태로 자신의 발언권을 획득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동과 서’, 더 구체적으로는 ‘중국과 미국’으로 양분되는 오랜 이원대립적 시각이 여전히 지속되며 모종의 적대적 패권 다툼으로 귀결되는 게 아닌가를 질문해 봐야 하지 않을까.
2014년 10월 15일, 북경에서 열린 시진핑의 문예좌담회 강화에서 ‘문예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중국몽 실현에 복무해야’ 함이 강조되었고, 2017년 10월 제19차 당대회 시진핑 보고에서 ‘오위일체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네 개의 자신감(사회주의 노선, 이론, 제도, 문화)’이 제기되었다. 앞서 언급한 북경전영학원에 설치된 ‘중국전영학파연구부’는 제19차 당대회 개최 직후 설립된 연구 센터로 중국전영학파가 위의 네 개 자신감 중 하나인 ‘문화 자신감’을 확립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리란 기대를 받고 있다.
  • 자료출처: 바이두
마오쩌둥의 ‘옌안 문예 강화’를 계승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는 시진핑의 2014년 문예 좌담회 강화는 신중국 건립 이래 중국의 영화 비평/이론을 관통하는 영화의 사회적 효용론, 즉 영화와 국가 이익 간의 밀접한 관계 강조가 여전히 공적 언설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현 상황과 호응한다. 상하이 대학의 천시허 교수가 신중국 건립 이래의 중국 영화 비평/이론을 고찰하고 ‘국가 이론’이라 명명한 중국의 이러한 영화관에서 영화는 ‘국가 이미지를 전시’하거나 ‘국가 의지를 체현’하는 것이 된다.4)
다시 이 글의 처음에 언급된 학술 포럼의 개회사로 돌아가 보자. 북경전영학원의 교수이자 학교의 당위원회 서기라는 입장상 허우광밍의 개회사는 당의 공적 발언이랄 수밖에 없지만, 지난 십 년간 중국 영화의 흥행 성적, 시장 규모, 스크린 수 같은 양적 성장세 소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영화의 국제적 영향력에 한계가 있었다’는 문제 인식 아래, ‘중국전영학파’ 구축을 해법으로 제시한 건 ‘중국영화학파’라는 새로이 제창된 개념이 단지 학문 체계에만 수렴되는 게 아니라 영화가 중국의 국가 이미지, 영향력 선전에도 충분히 유용한 기능을 담당한다는 ‘국가 이론’을 전제한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또한 시진핑이 2013년 8월 19일 전국선전사상 공작회의에서 강조한 ‘중국의 이야기를 잘 구술하고, 중국의 목소리를 잘 전파하여 세계에서의 중국의 발언권을 강화해야 한다(讲好中国故事,传播好中国声音,增强在国际上的话语权)’와 맞물려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전파할 ‘문화사절’로서의 중국 영화의 역할을 재확인하게 한다.
지난해 여름과 올해 겨울, 놀라운 흥행 성적으로 중국 내에서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화제에 올랐던 두 편의 영화가 있었다. <전랑 II>와 <홍해>다. 중국 영화에 이는 애국주의 열기를 실감케 하며, 시진핑 시대 정치 화두(이자 지금 중국의 ‘국가 의지’라 할)로서 천명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중국몽’을 체현한 작품이다.
이제 막 시동을 걸기 시작한 ‘영화학의 중국학파’가 일종의 학술 유파인지, 아니면 ‘국가 이론’ 아래 결집되어 창작, 비평/이론, 교육 전 분야를 아우르는 어떤 정치적 움직임이 될지는 아직 분명치는 않다. 중국에서 영화사를 공부하면서, 종종 중국의 영화를 할리우드의 서로 대립되는 개념쌍으로 간주하는 언급을 접하곤 한다. 그런 한편, 오랫동안 중국영화사의 정전으로 불려 왔던 청지화(程季华)의 『중국전영발전사(中国电影发展史)』(1962)의 서술에 기반해 중국영화사를 ‘중국 초기 영화-좌익 영화-옌안 영화-신중국영화’로 이어지는 주류 (선형) 프레임으로 바라보던 시선은 2000년대 이래 그 계보에서 배제되었던 더 많은 영화들, 사료들을 재발견, 재논의하는 ‘중국 영화사 다시 쓰기’를 통해 수정, 보완되고 있기도 하다. ‘중국전영학파’의 기치 아래 결집한 수많은 연구자들 각각이 중국 영화를 화두로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개할지 주의 깊게 지켜볼 일이다.

북경대학 예술학원 박사과정 홍지영

  • 1) 张英进, 「导言:民国时期的上海电影与城市文化」, 张英进主编, 苏涛译, 『民国时期的上海电影与城市文化』, 北京大学出版社,2011, p.6.
  • 2) 张英进, 『多元中国』, 南京大学出版社,2012, p.358.
  • 3) 张英进, 『多元中国』, 南京大学出版社,2012, p.359.
  • 4) 陈犀禾, 「国家理论视野下的电影本体论」, 『电影艺术』,2015年 第3期,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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