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책 도둑질은 고상한 범죄:
중국 문명과 지식재산권법의 역사

소강사회(小康社會) 달성과 중국몽(中国梦) 실현을 위해 시진핑 정부는 “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방식이며, 사회주의 법치국가는 의법치국(依法治国)의 전면적인 추진을 통해 실현된다”고 하였다. 이는 그동안 국가권력의 통치이념·수단으로 이용된 ‘인치(人治)’에서 벗어나 국정의 ‘법치화(法治化)’를 지속 추진해야만 개혁의 전면 심화가 보장된다는 것으로 앞으로 중국 사회가 ‘인치’에서 ‘법치’로 전환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1980년대부터 중국 정부는 사회주의 법제 국가 건설을 전면적으로 추진하였으며 21세기 초 WTO 가입과 함께 국제화 시대에 맞는 법률 제정 및 개정 속도를 가속화 함에 따라 법치화는 상당히 진전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21세기 중국 사회는 중국인의 전통적 정치관이며 권위주의 상징인 '인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왔으며 우리는 여전히 중국을 법치국가로 바라보지 않는다.
중국의 여러 법제 중 최근 많은 관심을 받는 법 중 하나가 지식재산권법이다. 2018년부터 시작된 미·중 간 무역분쟁에서 미국은 중국을 지식재산권 침해와 기술 탈취에 따른 불공정무역 국가로 선언하면서 중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문제가 전 세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우리나라 일반 대중의 인식 속에서도 중국은 지식재산권을 가장 많이 침해하는 국가, 지식재산권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지식재산권은 무엇일까? 지식재산권이란 지적 창작물 중에서 법으로 보호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해 법이 부여하는 권리를 말한다. 특허가 대표적이며 그 외에도 상표, 저작권, 디자인권 등이 포함된다. 이런 지식재산을 보호하는 법이 지식재산권법이다. 지식재산권법은 다른 일반 법들과 비교해 그 탄생의 역사는 짧다. 그런데도 기술이 중요해지는 요즈음 시대에는 가장 중요도가 높은 법이 되었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명명되는 미래 시대에는 디지털, 기술 등 각 영역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기술융합’이 일어나고 이에 대한 세계 각국의 지식재산 경쟁 또한 치열해질 것이므로 지식재산권에 관한 관심은 더욱 필요하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WTO 가입 준비의 일환으로 지식재산권 법제의 틀을 마련하기 시작하였고, 최근에는 가장 선진화된 법률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중국에서는 지식재산권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과연 그 이유가 앞서 설명한 ‘인치’ 때문일까?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은 중국 지식재산권 법제가 미성숙할 수밖에 없었던 해답을 중국의 오랜 역사에서부터 찾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앨퍼드(William P. Alford)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부학장이자 오랫동안 동아시아법 연구센터장을 역임하였다. 윌리엄 앨퍼드 교수가 1995년 출간한 「To Steal a Book Is an Elegant Offense: Intellectual Property Law in Chinese Civilization」 책이 마침내 하버드 동아시아법 연구 총서 중 하나로 2017년 「책 도둑질은 고상한 범죄: 중국 문명과 지식재산권법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국내에 출판되었다. 1995년 출간된 책임에도 해당 서적은 중국의 사회·문화가 지식재산권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분석한 역작으로 중국 지식재산권법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고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0여 년 전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면서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법을 공부하는,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단편적으로 중국의 전통을 무시한 채 서구식 사고방식에 길들어 중국 지식재산권법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던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서문은 현대 저명한 문학가이자 사상가 루쉰(鲁迅)이 쓴 두 번째 단편소설 공을기(孔乙己)의 한 구절인 “책 도둑질은 고상한 범죄다(窃书算不算偷)”로 시작하여 본 책의 저술 순서와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장에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서양의 지식재산권법 개념이 도입되기 전에도 중국에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고유한 제도가 있었는지를 살펴본다. 그러면서 왜 중국 문명이 여러 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과학기술이 발전하였고 문화적으로도 오랫동안 최상위권 국가의 지위를 유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예술 부문에서 창작을 더 포괄적으로 보호하지 않았는지를 고찰하였다.
3장에서는 중국에서 지식재산권법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기 위한 초창기 노력을 살펴보았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양에서의 지식재산권법제도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이라는 겉보기에도 상당히 다른 사회의 법을 체제에 이식하여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근본적 문제가 있음을 강조한다.
4장에서는 지식재산권법과 관련된 중국의 다양한 경험을 건국 초기에서부터 1980년대 마련한 지식재산권법 탄생이라는 발전사를 서술한다.
5장에서는 중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만의 저작권법 상황을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6장에서는 중국의 지식재산권법 도입을 압박하는 미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의 성공 여부는 중국 내 정치·경제적 권리가 전반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점을 논하며 마무리하고 있다.
종합하면 이 책은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을 주도해온 중국에서 지식재산권법 특히 저작권법에 상응하는 고유한 제도가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는지를 고찰한 다음, 서구의 지식재산권법이 어떠한 역사적 계기와 과정을 통해 중국에서 수용, 발전되었는지를 체계적으로 살피고 있다. 저자는 중국 사회가 지식재산을 전통적으로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중국의 지배적인 사상인 유교 관념에서 찾고 있다. 유교는 개인의 자유보다 사회 질서를 중시하므로 지식재산이라는 사적인 권리 보호보다는 이를 공유하는 사고방식을 중요시하였다. 이런 유교적 사고방식은 서양의 법제와 다른 중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개념을 만들게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한, 중국 학자들의 주장과 서양 법학자들의 예상과 달리 중국 통일왕조 시대에는 특히 중국 정치문화의 특성으로 인해 지식재산권법에 상응하는 중국 고유의 제도가 확립된 적이 없었으며 현재 중국에서 지식재산권법을 도입하려는 시도는 과거에서부터 있었으나 중국에 적합한 법적 모델이 있는지에 관한 검토 없이 미국, 유럽의 서양식 법제를 중국에 도입시키려고 한 것에 따른 모순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서양의 지식재산권법만 정상적이어서 중국의 발전을 그 기준에 맞춰 평가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지식재산권 관련 문제를 지적하는 수많은 국내외 연구들은 중국의 법리 설명, 대표 판례 소개에 그친다. 상당수의 기존 연구들은 중국 사회에서 지식재산권 법제가 수용되는 과정을 설명하거나 문화적 부분을 분석한 연구는 없으며 중국 지식재산권 법제가 만들어지는 과정, 그리고 그 규정이 사회에서 운영되는 방식에 관한 연구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은 중국에서 지식재산권법에 관한 역사적 연구를 한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하다.
중국은 항상 중요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계속 성장하는 대국으로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며 중국 정부의 정책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우리는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여 년 전 창작된 저서이긴 하지만 중국의 지식재산권법 발전에 관한 인식을 넓히고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 볼 것을 추천한다.

동아대학교 법학연구소 황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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