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중도 실력이 있어야 한다

최근 한국인의 중국 인식에 대한 여론조사를 보면 혐중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사드사태, 미세먼지, 코로나 등 그동안 누적되어온 불신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한국사회 곳곳에서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보인다. 대학에서는 현재 중국 학과 지원자 급감 사태로 표출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미중관계의 급속한 진전과 한중수교로 중국 학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이제 미중경쟁과 한중의 불편한 관계를 직면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사실 중국 학과가 잘 나가던 때에도 전공을 살린 찐 취업자 수가 2,30%대를 넘기기는 쉽지 않았다. 그동안은 학과 과잉에 졸업생 과잉이 상존하던 중국 붐의 시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급성장으로 진입 장벽이 높아진 지금, 혐중이 아니더라도 중국에서 통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이 더 힘들어졌다.
사드사태나 미세먼지가 한국이 피부로 느끼는 불신 요인이라고 한다면, 전 세계적인 불신의 바탕에는 경제성장 이후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이 깔려있다. 코로나 사태 역시 중국이 비민주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며, 민주주의 사회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계 리더를 꿈꾸는 일은 중국에 대한 세계인의 두려움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서구의 기대처럼 경제성장 이후 민주주의가 자연스레 도래하는 것은 아니며, 기존의 경제성장에 내재한 문제를 국민의 참여를 통해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이 열린다. 낡은 발전 패러다임으로 경제성장이 한계에 부딪치거나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할 때, 국민이 참여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개발독재를 통한 경제성장 이후 80년대에 민주화로 군부정권을 교체했지만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 사회가 바로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90년대에 탈정치적 개인주의가 만연하고 IMF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도래함에 따라, 고용 없는 성장으로 국민의 삶이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였다. 경제 패러다임의 문제 위에 사회적 불평등, 정치부패가 중첩되자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정치에 참여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성장 동력이 되살아나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한국정치가 시민 참여의 민주주의에 기반하게 된 것은 80년대 경제성장 이후가 아니라 경제성장과 국민의 삶이 위기에 처한 최근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중국의 경제성장은 시진핑 정부 들어 산업혁신을 바탕으로 중속 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대중국 공세와 내부 경제문제에 직면해 있지만, 경제성장 시스템이 붕괴하여 민생 위기로 폭발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경제의 측면에서 보면 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인민의 삶의 측면에서 보면 소득주도 성장을 통해 중산층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은 경제성장이 아직 진행 중이고 인민의 삶의 질이 점차 향상되어가는 국면에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인민이 정치에 참여할 공간과 공산당에 대항할 정치 세력이 없다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지만, 현재의 중국 정치체제를 부정할 경제성장의 문제나 인민의 삶의 위기가 출현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에 대한 서구적 테제로 중국인의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제한적인 관찰로 여겨진다. 그래서 민주주의 문제보다는 코로나 사태 전후로 진행되고 있는 중국사회의 전환 속에서 중국인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 욕망, 문화 등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종합적인 관찰과 예측이 필요해 보인다.
첫째, 디지털 관리시스템과 빅브라더의 그림자. 중국은 코로나 방역 과정에서 전국 단위의 의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디지털 감시망을 통해 확진자 동선 추적과 접촉자 식별 그리고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에 대한 공안 통보 시스템을 정립하였다. 이는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구축해온 디지털 관리시스템에 기반한 것인데, 세계 최고의 안면인식 기술과 스카이넷, 매의 눈 등의 감시시스템이 중국이 빠른 시간 내에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중국식 디지털 감시기술의 수준이 재확인된 셈인데, 이는 사생활 보호보다는 안전을 우선하고 개인정보에 대한 낮은 국민의식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통제된 안심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중국에서 이제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존재는 불가능한 개념이 되었다. 디지털 혁신기술에 기반한 초연결사회가 반드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며, 어떠한 목표를 위해 운영하느냐에 따라 권위주의 통치가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디지털 경제와 기업문화의 변화. 코로나 사태 이후 언택트 소비가 늘어나면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었으며, 특히 재택 근무로 업무 패턴이 변화되면서 딩톡, 텐센트 미팅과 위챗워크, 줌 등이 최대 수혜를 받고 있다. 전자상거래, 온라인교육, 무인배송, 원격의료, 자율주행 등의 분야가 이전보다 한층 성장할 기회를 얻고 있으며, 중국 전체적으로 볼 때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속도가 확연히 빨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주축을 이룬 중국 모바일 생태계는 플랫폼 기업의 조직문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인터넷 트렌드에 적응하기 위해 중국 플랫폼 기업들은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들고 실무 부서에 과감하게 권한과 책임을 위임해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연성과 혁신 덕분에 중국 플랫폼 기업은 과거 모방자에서 이제는 세계 플랫폼 기업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위치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전통 제조업과 건설 분야의 권위적인 위계질서 중심의 기업문화와는 다른, 시장의 변화와 소비자의 욕구,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중시하는 새로운 기업문화의 기반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셋째, 중산층 사회와 소비의식의 변화. 전 인민이 중산층 삶을 향유하는 전면적 소강사회에 들어선 중국 소비자들은 제품의 질과 신뢰성을 중시할 뿐 아니라 타인과 구별되는 개인적 취향과 가치를 내세우고 있다. 물론 애국주의 소비를 하거나 국내외에서 과시형 소비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자기 주도적이고 진보적 취향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소비자들이 코로나 사태 이후 디지털 소비문화를 선도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들이 슈퍼차이나의 과시형 소비의식에서 벗어나 친환경 ·건강·신뢰·취향 중심의 진보적 소비의식을 형성해나간다면 중국사회의 혁신이 한층 빨라질 수 있다. 최근 중국에 등장한 안티 바이러스 기능을 지닌 자동차 필터나 공기소독기, 로봇 서비스 호텔 등의 비즈니스 트렌드는 이러한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영향력을 반영한 현상이라고 할 것이다.
넷째, 공공보건과 사회복지의 중요성 인지. 2003년 사스 발생을 계기로 중국은 공중위생과 전염병 예방·통제 수준을 개선하기는 했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중국 공공보건 및 사회복지체계의 낙후한 실태가 심각하게 드러났다. 중국 정부는 민생과 생태문명을 국정 과제로 내걸고 있었으나, 실제에서는 경제성장을 우선하는 정책으로 인해 인민의 건강한 삶이 소외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재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인민의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사회복지체계 재정립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되었다. 중국인들은 코로나 사태가 위생 보건시설 미비, 유전자조작 농산물, 부적절한 사료를 통한 육류 생산 등의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알았고, 생태문명이 국정 과제를 넘어 자신의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자각하게 되었다. 나아가 국가 공공정책의 중요성을 인지하면서, 국가는 인민을 통치할 뿐 아니라 인민의 삶의 질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취지의 중국 헌법 제45조 중국 헌법 제45조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은 연로하거나 질병이 있거나 노동력을 상실할 경우, 국가와 사회로부터 물질적 도움을 얻을 권리가 있다. 국가 발전은 국민이 이러한 권리가 필요로 하는 사회보험과 사회 구제 및 의료와 보건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중국의 헌법에서도 인민 행복의 근간이 되는 사회보장을 국가가 제공해야 하고, 인민은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러한 헌법 규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였고 사회복지의 문제를 공론화해야 할 학계와 언론에는 작은 정부를 신봉하는 시장주의자들이 많아서, 헌법의 취지가 인민 행복의 권리로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정치경제적 장벽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다섯째, 법치와 권리의식의 형성. 시진핑 정부는 의법치국의 구호를 통해 법치사회를 구현하고 있는데, 중국에서 법치의 의미는 인치가 아닌 법에 기반한 통치방식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그래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권력을 감시·통제하는 선진사회의 법치와는 개념상에서 상당한 격차를 지닌다. 시진핑 정부는 공산당 권력 집중과 국민의 정치참여 제한 문제를 해결할 의향이 없으며, 공산당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국가 통치방안으로 법치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당내 권력남용과 부정부패 척결이 중국 법치의 현실적인 목표라고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점은 법치의 제도화가 진행되면서 하루에 수백 건에 이르는 대중 시위 및 각종 권리침해소송이 관련법에 근거하여 주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법치가 단순한 통치수단을 넘어 중국인의 정치 사회적 권리 신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와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중국인 역시 안전하고 건강한 삶의 중요성을 실감하였다. 또 지금의 상황은 중국을 넘어 전 지구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사실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점은 중국의 국가정책으로 가시화되고 있지만, 중국인 개개인의 의식 변화와 실천이 수반되어야 지속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 코로나 사태에서 사생활의 보호보다 국가와 공동체의 안전을 우선한 중국인의 생각이 지구와 인류공동체의 안전을 고민하는 생태문명적 사유로 확장되고, 중국 기업가들은 이러한 생태문명적 사유를 일상생활에서 구현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중국 소비자들은 과시형 소비를 넘어 환경과 건강을 중시하는 진보적 소비문화를 형성한다면, 이 과정에서 중국인이 세계시민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중국인에게 이러한 희망을 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중국 현실에 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방역에서 효과를 발휘한 중국의 디지털 관리시스템이 중국인 개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장애하는 중앙집권형 디지털 통치사회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그러하다. 또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우선하는 중국인의 욕망이 환경을 위해 절제되고, 전 지구적 생태문명 사유로 전환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그러하다. 게다가 미중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은 중국인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가로막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 내부에는 미국의 공세를 초래한 것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도 있으나, 세계패권에 다가가고 있다는 중국인 특유의 프라이드와 코로나 사태의 성공적 대응으로 국가 관리체제에 대해 더욱 신뢰를 보내고 있다. 국가가 인민의 높아진 욕구를 맞추지 못할 경우 비판의식이 형성될 가능성도 있지만, 미중경쟁의 상황은 이러한 의식의 성장을 국익의 이름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코로나 사태를 통해 중국인들은 충격적인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바로 세계인이 중국인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세계의 중심으로 자부하던 이들이 그 정반대의 사실을 알았다는 것, 어쩌면 이점이 중국사회의 전환이 시작되는 동력이 될지도 모른다.
주지하듯이 한국인의 혐중은 한국 내부의 정치 대립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중국이 불러일으키는 불신과 아울러 한국 내부의 정치 대립으로 인해, 혐중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일이 되었다. 혐오는 궁극적으로 사라져야 하지만, 한중 간에 상존하는 문제라면 이른바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중국이라는 거대국가와의 관계에서 혐오 국면을 견딜 수 있는 것도 한국의 실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실력으로 승화시켜야 만이 혐오 국면을 지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전후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변화는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세계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상이며, 국가들이 처한 여건에 따라 그 방향은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문명 대전환 현재 미중경쟁의 문제가 세계사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지만, 이를 보는 시야는 전 지구적 탈서구 운동의 차원으로 넓혀볼 필요가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서구 중심적인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탈피하려는 흐름이 흥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문명과 종교, 지역을 바탕으로 전 지구가 더불어 살아가는 대안 세계를 모색하는데, 이러한 흐름을 문명 대전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터키, 이란,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등이 주축이 된 이슬람 공동체, 인도가 중심이 된 남아시아 지역협력연합, 러시아가 주도하는 대유라시아 연합, 동남아 국가들이 연대한 아세안 등이 그러하며, 중국이 구상하는 일대일로 역시 이러한 전 지구적 차원의 문명 대전환 운동 위에 위치한다. 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급격한 전환이 예상되며, 신자유주의 발전 패러다임에 내재한 모순과 전 지구가 공동으로 직면한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해나가는 국가가 미래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우 중앙집권형 통치방식을 통해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그 효율성과 내재한 문제점 역시 현재와 유사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공동의 문제에는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한국의 선진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여, 전 지구적인 공감(보편가치)을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중국의 중앙집권형 디지털 통치사회와 다른 시민사회형 디지털 민주사회를 만들고, 친환경·건강·신뢰 중심의 진보적 주체의식을 통해 생태위기의 대안을 만들고, 사회적 불평등을 넘어 국민의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한국형 복지사회를 이루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공정하게 실현하는 법치사회를 만드는 등 세계가 공감하는 보편가치를 구현하는 일이 바로 그러하다. 이러한 과제는 일관된 국가 목표 하에 중장기적으로 실천해가야 하는 일이며, 정권 교체에 상관없이 지속적인 추진이 가능해야 한다. 미국은 국익을 위한 중장기 국가 전략에 대해선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큰 변화없이 계승하고 있으며, 중국은 공산당의 미래 국가 전략을 당면한 시세에 적응해가면서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게는 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워 일관되게 추진해나가는 국가적 기반을 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코로나 방역과정에서 한국은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K-방역의 대응모델을 만들었는데, 이는 우수한 의료 인력,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 높은 시민의식 등에 기반한 한국적 산물이다. 한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하는 영역이 제품·서비스·콘텐츠에서 이제는 사회모델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앞으로 인류 생존의 관건이 될 생태위기의 대응 수준으로 볼 때, 한국은 장기적 로드맵이나 실천의지 면에서 후진국에 가깝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악의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적 저감 방안이 결여되어 있으며, 오히려 타국에 석탄발전소를 건설하여 기후악당이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에서도 중국을 포함한 외부적 요인과 국내적 요인이 복합되어 있는데, 국내적 요인의 개선이 없다는 점이 중국에게 책임 회피의 빌미를 제공하는 실정이다.
글로벌 경제가 디지털 경제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 가운데 하나가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서비스·콘텐츠의 모델을 만드는 테스팅마켓이 되는 길이다. 한국이 세계적 테스팅마켓이 되기 위해선 창의적 인재와 진보적 소비주체가 있어야 하며, 이는 교육·연구개발·생산·소비의 선순환을 촉진하는 복지시스템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다. 복지시스템은 테스팅마켓의 필수기반일 뿐 아니라 코로나 사태와 같은 대재난에서 국민의 삶을 보호하여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근간이다. 한국형 복지사회를 만드는 일이 바로 국민의 창의적이고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길이며, 한국사회가 혁신되기 위한 관건적인 부문이라고 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 문명 대전환의 시대에 직면해 있으며, 한국 역시 성장 위주의 사회에서 벗어나 문명의 진보를 위한 사회혁신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디지털 문명경쟁의 차원에서 볼 때는 어쩌면 미중보다 한중 간의 경쟁이 더 부각될 수 있으며, 나아가 한중관계도 안보갈등을 조정하여 삶의 질과 사회혁신 경쟁으로 전환한다면 세계 평화와 환경을 위한 연대와 협력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혐중이 이러한 경쟁을 추진하는 동력으로 승화되어야 한국 내부의 정치 대립을 넘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혐중도 실력이 있어야 한다.

저술가 이종민

  • 1) 중국 헌법 제45조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은 연로하거나 질병이 있거나 노동력을 상실할 경우, 국가와 사회로부터 물질적 도움을 얻을 권리가 있다. 국가 발전은 국민이 이러한 권리가 필요로 하는 사회보험과 사회 구제 및 의료와 보건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중국의 헌법에서도 인민 행복의 근간이 되는 사회보장을 국가가 제공해야 하고, 인민은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러한 헌법 규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였고 사회복지의 문제를 공론화해야 할 학계와 언론에는 작은 정부를 신봉하는 시장주의자들이 많아서, 헌법의 취지가 인민 행복의 권리로 실현되기까지는 많은 정치경제적 장벽이 존재하고 있는 실정이다.
  • 2) 현재 미중경쟁의 문제가 세계사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지만, 이를 보는 시야는 전 지구적 탈서구 운동의 차원으로 넓혀볼 필요가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서구 중심적인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탈피하려는 흐름이 흥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문명과 종교, 지역을 바탕으로 전 지구가 더불어 살아가는 대안 세계를 모색하는데, 이러한 흐름을 문명 대전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터키, 이란,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등이 주축이 된 이슬람 공동체, 인도가 중심이 된 남아시아 지역협력연합, 러시아가 주도하는 대유라시아 연합, 동남아 국가들이 연대한 아세안 등이 그러하며, 중국이 구상하는 일대일로 역시 이러한 전 지구적 차원의 문명 대전환 운동 위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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