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를 향한 긴 논의의 시작

보이지 않는 레드라인: 폭넓고 애매모호한 홍콩 국가보안법
홍콩에 작년 6월 국가보안법이 도입될 때, 한국에서는 반응이 다소 엇갈렸다. 국가의 이름으로 시민의 자유에 가해지는 통제에 일관되게 반대하며 반대 행동을 펼친 시민들도 있었지만, 국가보안법은 우리에게도 있다는 현실은 사람들을 다소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던 것같다. 평소 한국의 국가보안법 철폐 신념을 갖지 않았던 사람은 홍콩의 국가보안법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한국에선 국가보안법이 평소 일상에 크게 상관이 없는데, 홍콩에서는 크게 다를까? 다른 나라에서 국가를 뒤집거나 분열시키려는 시민의 행동을 처벌한다는 데 대해 내가 반대하는 게 맞을까? 등등의 반응도 있었다. 이는 평소 한국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견해와도 연관되는 문제라서, 간단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홍콩에서 시행 중인 국가보안법은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폭넓고 애매모호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근 홍콩에서 가장 이슈가 된 사건 중 하나는, 청년들이 국가보안법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거주지에서 나온 초콜릿 등의 식품이 명백한 유죄 증거로 지목된 것이었다. 초콜릿이 왜 국가보안법 위반죄 증거가 되냐는 질문에 경찰은 “이 초콜릿을 수감자들에게 제공할 것이고, 그러면 수감자들이 초콜릿을 빌미로 감옥 안에서 추종자들을 만들어내서 중국과 홍콩 정부를 증오하게 만드므로 국가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답했다. 이로 인해 한동안 “국가 안전은 초콜릿으로도 위협당할 수 있는가” 하는 씁쓸한 질문이 유행처럼 퍼졌다.
홍콩판 국가보안법에서 가리키는 국가 ‘전복과 분열’ 행위는 정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다. 특히 중요한 점은, 중앙정부, 즉 중국정부에 대한 비판만 타겟이 아니라는 점이다. 홍콩 정부기관에 대한 모든 비판도 해당된다. 즉, 어떤 사회에서든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또는 경찰 행위에 대한 비판도 모두 홍콩에서는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다. 종신형까지 가능하고, 국가보안법 관련 안건은 법관을 행정수반이 직접 지정한다. 홍콩은 중국 본토와 다른 법체계로서 배심원 제도가 있지만, 국가보안법 안건에서는 배심원을 제외하고 법관들만이 판결을 내린다. 특히 중국에서 직접 기구를 홍콩에 설치하여 법을 집행하는 점 또한 예상치 못했던 지점이다. 전세계 외국인이 외국에서 한 모든 언행도 포함되고, 홍콩의 모든 다른 법을 능가하며, 어떤 제어와 견제 장치도 없다. 전통을 가진 홍콩 신문인 밍빠오(明報)는 “레드라인이 애매하니 정해달라”는 사설을 게재하여 언론계에서 굴욕적이라며 비판을 받기도 했고, 학교 교사들은 도대체 어떤 발언이 국가보안법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으니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레드라인은 보이지 않고, 밟은 다음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라인은 계속 변화한다.
  • 사진 1: 2014년 우산운동 때 비폭력을 강조하던 시위대 측 포스터. “경찰에 반항하다가 경찰 공격이 되어버릴 수 있으므로 반항하지 말라”, 출처: 필자 촬영
국가보안법 도입은 홍콩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지금 홍콩에서는 전방위적 통제 강화를 위한 각종 법과 조례가 끊임없이 규정 또는 개정되고 있다. 코로나를 이유로 정부가 1년 연기를 선포하여 12월에 열릴 의회 선거는 민주파가 거의 아무도 참가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파 의원들은 이미 다수가 체포 또는 기소된 상태고, 의원 자격이 정부에 의해 박탈된 사람도 많다. 새로 제정된 규정에 따른 ‘충성’ 선서를 거부한 사람도 많고, 의회에 남기 위해 선서를 해도 무효가 되어 의원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한다. 교실에는 감시 카메라를 모두 달자고 친정부파는 계속 주장하고 있고, 학생과 교사들의 상호 신고가 잇따르며, 교사들의 해직 또한 계속되고 있다. 교과서 내용도 바뀌고 있고, 전통 있는 대학들도 학생회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학생회는 수십 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속속 해산하고 있다. 언론들도 단체들도 계속 문을 닫고 있고, 그 속도는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왜 중국정부가 이렇게 강력한 버전의 보안법을 홍콩에 도입하여 명시적 통제와 동질화를 하려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많다. 중국정부의 입장은, 홍콩 시위가 중국의 핵심 이익, 즉 영토의 완전성과 주권을 침해한다는 것이고, 특히 외국 정부와 시민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것은 홍콩과 ‘결탁’하여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홍콩 시위가 이렇게 규정된 후 중국 본토인들 중 홍콩 시위를 지지하던 이들은 더 이상 지지하기 어렵게 되었고, 대부분의 중국 본토인들은 이제 단결되는 효과가 생겨났다. 2019년 송환법 반대시위 과정에서 모처럼 만들어지고 있던 중국 본토인과 홍콩인 간의 연결의 끈이 끊어진 것은 비록 양측의 민간에겐 큰 비극이지만, 중국정부가 원한 효과를 거둔 것은 분명하다.
기존의 시민사회와 자유주의 모델이 끝나다
2014년 홍콩 역사상 처음으로 대규모의 시민이 도심 길거리를 79일간 평화적으로 점령했던 우산운동은, ‘평화와 비폭력’으로 시민들이 정부에 요청하고 ‘청원’하면 ‘민주’를 얻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 기반한 것이었다. ‘아름다운’ 방식으로 민주를 얻어내는 것이 바로 홍콩의 자부심이라고 믿었던 그들은 철저히 실패했다. 오랜 기간 홍콩을 지배했던 ‘가상 또는 허상의 자유주의’1)는 우산운동 때 찬란하게 불꽃을 피워올렸고, 그 실패 좌절은 오랜 시간 무력감을 낳았다. “시민사회 모델과 가치에 대해 이제 많은 이들이 참을 수 없게 되었다.”2)
우산운동 실패 후 청년들은 이제 ‘조국’에 대한 반감을 거칠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축구장에서 국가(國歌)가 나올 때면 몸을 돌리고 야유를 보냈다. 중국정부는 좌시하지 않았고, 국가(國歌)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모욕하는 것을 금지하고 최고 3년 수감형에 처하는 국가법(國歌法)을 중국본토 그리고 홍콩에 도입하였다.
2016년엔 어묵 노점상을 지지하는 시위가 격해지면서 하룻밤동안 ‘폭동’이 벌어진 ‘어묵혁명’이 발생했고, 이를 주도했던 강경파 청년들은 그 해의 의회 보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16%가 넘는 66,524표를 얻었다. 비록 낙선했지만 놀라운 결과였고, 이는 홍콩의 정치 지형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3) 강경파 청년 중 일부는 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는데, 그 해 10월 의회 선서 때 돌발 행동을 하여 중국 정부가 직접 유권해석으로 의원 자격을 박탈했다. 고조되던 사회 분위기는 빠르게 식었고, 다시 어떻게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지 혼란스러워졌다. 깊은 좌절과 무력감 속에서 아무 토론도 할 수 없는 채로, 정부의 정책 강행, 우산운동 주동자들의 잇따른 수감을 몇 년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서 2019년, ‘홍콩을 지키는 마지막 싸움’이라 불린 송환법 반대시위가 터져나왔다. ‘가상 또는 허상의 자유주의’는 아직 불씨가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시위 초반 시민들은 여전히 ‘평화적’ 방법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고, 평화적으로 100만 명, 200만 명이 행진을 성공시킨 데 대한 기쁨과 자부심은 컸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에도 움직이지 않았고, 2014년 우산운동의 교훈에 기반하여 이번엔 빠르게 시위 방식이 달라졌다. 반환기념일인 7월 1일 홍콩사회를 놀라게 한 반나절 동안의 의회 점거시위는, 제도적 개혁에 대한 믿음의 종식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물론 홍콩인 대다수는 여전히 이런 행위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었고, 시위대 본인들도 폭도가 아니라고 계속 강조하기도 했다. 음료수를 가져가며 돈을 놔뒀고, 의회 안의 귀중한 보물이나 책들도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충돌은 점점 격렬해졌다. 지하철역에서 폭력배와 경찰의 시민 구타사건, 국경절 경찰의 실탄총격에 이어, 정부는 10월 4일 수십 년만에 긴급법을 발동하여 복면금지법을 도입했다. 시위 과정에서 대학생 사망까지 이어지며 시위와 충돌은 거세졌다. 11월 말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는 역대 최대 승리를 거두며, 지난 번 선거에 비해 263석이나 더 얻어내 388석을 획득했다. 평론가들은, 중국정부가 이 선거를 거치면서 친정부파 정치인들의 기반이 사라졌음을 깨달았고, 이제 더 강하게 직접적으로 홍콩을 통치해야겠다는 결심을 갖게 되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2020년 마침내 국가보안법이 도입되었다. 중국의 통치방식도 이제 완전히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홍콩에서도 기존의 시민사회 모델과 자유주의 모델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게 되었다.
  • 사진 2: 2019년 11월 홍콩중문대 시위 때 벽에 있던 글귀. “나도 예전처럼 생활하고 싶다. 그러나 이미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출처: https://www.instagram.com/p/B41SlXdgz-2/?utm_source=ig_web_copy_link
민주란 무엇인가를 향한 고통스러운 논의의 시작
중국본토 청년과 홍콩 청년은 최근의 익명 대담에서 이렇게 함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민주는 분명히 불가능해졌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 만일 자유를 단지 정권과의 관계만으로 정의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더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을까.”4)
이 질문이 보여주듯, 홍콩 그리고 중국본토 사회는 민주와 자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시작해야 하고 또 시작하고 있다. 이것이 이들이 세계사적으로 가지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다. 중국은 서양식 민주 모델이 세계적 표준이 될 수 없다고 비판하며, 중국이 나름의 모델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해 왔다. 서양식 민주 모델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분명히 정당성을 가지지만, 중국이 만들어낸다고 주장하는 모델에 대해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아무도 정답을 갖고 있지 못한 이 깊고도 어려운 문제에 대해, ‘민주가 분명 불가능해진’ 홍콩에서 사람들은 이제 가장 근본적 질문부터 차근차근 던질 수밖에 없다.
2020년 보안법 도입 직후 이뤄진 설문조사는 이와 관련하여 의미심장한 결과를 보여준다. 민주적 특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해 다양한 문항을 제시한 설문조사에서, 시민들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극명하게 다른 답을 제시했다.
스스로를 민주파라 여기는 사람들일수록 ‘민주’의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았다: 공평선거, 의견의 자유로운 표출, 정부에 대한 입법기관의 감찰,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단체 조직, 언론매체가 자유로이 정부 비판, 정당이 공평하게 경쟁, 시민이 자유로이 항의 참여.
반면 스스로를 친정부파라 여기는 사람들일수록 ‘민주’의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았다: 빈부격차 감소, 세금낭비 안하기, 정부가 시민에게 우수한 공공서비스 제공, 정부가 시민에게 필수품 제공, 정부가 법률과 사회질서 확보, 정부가 청렴하고 부패하지 않을 것.5)
이처럼 정치적 성향과 정체성에 따라 ‘민주’라는 가치에 대한 관념 자체가 극명하게 다른 상황은, 민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이 길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것임을 보여준다.
홍콩 민간에서는, 그동안 민주에 대한 교육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권리에 대한 시민교육이 너무 부족했다는 자성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공포 상황에서 표면적으로 순응적 태도가 지배적일 수밖에 없고, 그 외의 다른 대안적 방법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기존 시민사회 모델이 끝났을 뿐 아니라 시민사회 자체도 사실상 죽어가는 상황이다. 대표성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는 아무도 없고, 모두가 해산되거나 체포되고 있다. 2019년부터 시위를 거치며 다양한 개인과 새로운 단체들이 등장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거의 절멸된 상태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새로운 개인이나 단체가 등장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시간은 오래 걸릴 것이다. 씨앗은 다시 뿌려질 수 있을까. 1990년 설립되어 3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홍콩의 대표적 노조연맹조직 직공맹(香港職工會聯盟; HKCTU)은 최근 해산을 앞두고 이런 질문을 홍콩사회에 던졌다:
1989년 이후 다음번 모이는 게 14년 후 (2003년)일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 했었다;
2003년 이후 다음번 모이는 게 11년 후 (2014년)일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 했었다;
2014년 이후 다음번 모이는 게 5년 후(2019년)일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 했었다;
그 날들에 우리는 다음 번 다시 만날 때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었나?
당신은 지금 다음 번의 도래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문화인류학자 장정아

  • 1) 安徒, 『逆權論我城』, 2020, 香港: 花千樹出版有限公司.
  • 2) 李達寧, “從雨革到魚革,公民社會的範式轉移”, 2016.2.14. 明報.
  • 3) 이 강경파 청년들에 대해서는 장정아, “‘본토’라는 유령: 토착주의를 넘어선 홍콩 정체성의 가능성”(2016, 『동향과 전망』 98호) 참고.
  • 4) “中港青年對談:威權時代,你不可以讓自己過得很舒服”, 2021.6.4., 端傳媒.
  • 5) “香港人、本土派,他們如何理解此城未來?”, 2020.8.20., 端傳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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