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과 한중외교

윤석열의 새 정부가 출범되었다. 최우선적인 당면과제는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종식하고 황폐된 민생과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지만 총체적인 안보적·경제적 위기상황 돌파에 대한 기대도 크다. 무엇보다도 윤석열 정부의 국가전략의 중심축이 어디에 있는가를 두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후보자 시기부터 강조했던 ‘한미동맹 재건’과 ‘포괄적 동맹’을 중심으로 안보문제와 경제문제를 풀어갈까, 아니면 G2의 나머지 일방인 중국이라는 신흥 강대국을 파트너로 받아들일까? 상당수의 외교 전문가들은 선거공약과 후보자 시절의 발언을 근거로 한미동맹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취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양다리전략’과 ‘전략적 모호성’ 대신 명확한 친미외교 노선을 취할 것이라는 견해가 대세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한미동맹 강화는 물론이고, 쿼드(QUAD),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오커스(AUKUS) 등 미국주도의 방위협력체에 참여해야 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경제적으로도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사슬이나 민주주의 가치사슬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문제는 최근 미국이 진행하는 군사, 경제적 동맹강화 게임의 이면에 ‘중국봉쇄, 중국억제’라는 전략적 목표가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하는 편향적인 선택을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최대의 경제파트너인 중국과의 관계는 불편해지고 소원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한미동맹 강화를 전면에 내세워야 할까? 섣불리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결론은 “그래야 한다”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상대하고 중국과 안정적으로 거래하기 위해서는 “미국이라는 뒷배”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기에 양자관계는 물론이고 수많은 다자관계의 틀 속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밖에 없다. 국제사회는 그야말로 국가이익을 탐하는 무한경쟁의 홉스적 자연상태이다. 이익이 있으면 위험이나 손해도 감수해야 할 경우가 있고, 이익을 공유하거나 도움이 되는 대상이라면 누구든 파트너로 선택할 수도 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도 수시로 상기해야 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나를 살피는 것도 외교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본적인 생존요령의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 시진핑 정부가 보는 윤석열 정부는 어떨까? 윤석열 후보의 당선발표 직후 중국이 보인 반응이 재미있다. 첫 질문이 “사드3불은 유효한가?”였다. 어떤 의미였을까? 윤석열 정부가 중국봉쇄동맹에 참여하여 사드 배치를 확대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려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이었을까 아니면 시진핑 주석이 방한을 하면 사드3불을 이행한다는 ‘사드3불 약속’이 여전히 유효한가를 묻는 질문이었을까? 중국의 의도는 ‘왕치산’의 취임식 참석으로 분명해졌다. 시진핑의 심복이자 실제적인 권력서열 2위인 왕치산 국가부주석의 방한이 가지는 의미는 바로 시진핑 주석의 방한이다. 시진핑 정부는 윤석열 정부와 거래를 원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무엇을 거래할 것인가? 중국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외교는 내정의 연장이다”. “우정은 변해도 이익은 영원하다.” 중국 시진핑 정부가 윤석열 정부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한미동맹 강화를 공언한 윤석열 정부와 어떤 거래를 할 수 있으며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중국의 입장에서 윤석열 정부가 필요한 이유를 추정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략적 측면에서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난 트럼프 정부시기부터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치열한 경쟁, 갈등 관계로 비화된 것은 중국부상에 대한 미국의 우려나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양국간 소통의 부재로 인한 중재와 협상의 실패 때문이다. 그 원인을 추적해보면 기존 중미간 소통창구 역할을 했던 대만과 한국이 매개기능을 상실한 탓이다. 대륙강경책을 고집했던 대만의 차이잉원 정부는 대륙의 시진핑 정부와 단절되었고, 반미론자들로 구성된 한국의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불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때문에 중국-대만-미국의 소통로와 미국-한국-중국의 소통로가 동시에 단절되었고, 양국 사이를 중재하는 완충기능도 마비되었다. 결과적으로 미중 양국이 직접 충돌하여 트럼프의 미중 무역전쟁 발동, 바이든의 대중국봉쇄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같은 상황은 시진핑 정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할 수 밖에 없다. 굳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중국 시진핑 정부는 현재 수준에서는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시진핑 정부의 관심은 오직 출범 초기 발주한 일대일로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에 있다. 일대일로를 세계적·역사적인 사업으로 치환시키고 국가 총동원령을 내려 추진하는 이유는 사업이 성공해야만 ‘위대한 중화의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고, 제3기 집권연장의 명분도 확보할 수 있다.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미국을 자극해 분란을 일으키는 타초경사(打草驚蛇)의 우를 범할 필요가 없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의 미국편향정책이 한미 신뢰관계 회복과 관계정상화를 유인할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중-미 소통로 복원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중국에게 유리하다.
둘째, 국내정치적 측면에서 검사 윤석열의 한국 대통령 당선은 시진핑의 부패전쟁을 정당화할 법적 명분과 연결된다. 시진핑 주석은 집권과 동시에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파리에서 호랑이까지 때려잡는다는 구호하에 정적들을 숙청하고 헌법개정을 통하여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시진핑은 ‘법’의 칼날을 치켜들고 ‘법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만약 광장정치로 대표되는 한국의 촛불정치가 재현되어 중국으로 파급되었다면 장기집권을 노리는 시진핑은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더우기 시진핑의 3연임이 결정될 10월의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시기까지는 중국정부가 코로나 방역을 명분으로 엄격한 여론통제와 사회봉쇄를 유지할 것인데 그렇게 되면 사회적 불만이 팽배할 것이고 광장정치나 민중봉기의 등장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국제여론과 홍콩, 신장 위구르, 대만, 장기집권 등의 이슈가 연계될 경우 혼란을 초래할 여지가 크다. 그런 점에서 법조계 출신의 윤석열 정부의 등장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국편향성에 대한 우려와는 별개로 윤석열 정부의 정책노선은 시진핑 정부의 정책과 전략 파트너로서 안성맞춤인 점이 많다. 윤석열 정부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계승한 보수정당 출신이다. 한중관계발전 과정을 보면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협력이 1992년 한중수교로 결실을 맺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응한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 G20정상회의 기제 발족 등의 대형 이벤트로 지역협력이 이루어졌다. 공교롭게도 모두가 윤석열이 속한 보수정당 집권시기였다. 윤석열 정부의 시각과 국정운영 철학도 중국외교원칙과 부합한다.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한미동맹, 대북억지력, 합리적 판단 등의 수사들을 보면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정치관이 지극히 현실주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중국외교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루쉰(魯迅·1881~1936)의 사고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현실을 직시하라. 편견 없이 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고 그 본질을 꿰뚫어 보고 난 후에 현실주의의 대도(大道)를 걸어가야 한다. 현실주의는 판에 박힌 개념화가 아니라 미래지향의 현실참여임으로 눌림당하는 현실을 꿰뚫고 전진해야 한다”. 실제 한중관계에 현실주의적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과 중국은 합리적 거래가 가능한 상대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담벼락에 걸터앉아 양다리를 걸치는 위험을 감수하며 지냈다. 지금부터라도 ‘이익’에 근거한 합리적 거래를 한다면 ‘전략적 모호성’, ‘눈치보기’라는 외교적 수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참으로 반가운 것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 왕치산 국가부주석을 축하사절로 보냈다는 사실이다. 왕치산은 시진핑 정부의 실제적인 2인자로 부패와의 전쟁을 총지휘하는 선봉장이고 시진핑의 호위무사이다. 그런 그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다는 사실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며 체면을 세워준 격이다. 그만큼 중국정부가 윤석열 정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의미이다. 왕치산의 방한은 곧 시진핑의 방한으로 이어질 것이고 만약 시진핑의 한국방문이 성사된다면 3연임에 성공한 국가주석의 격에 맞는 선물꾸러미를 가져올 것이다. 중국의 정성에 걸맞게 미국도 취임식에 부통령의 부군을 보내 축하했고 5월 20일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어떤 취임선물을 준비할까?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중국과 미국이 각별히 축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면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와 같은” 선택을 강요받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행운일까 아니면 선택을 강요받는 시험대일까? 지구에 기생하는 인간들의 삶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국가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최적의 선택을 위해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중미 G2가 관리하는 국제사회에서 살아남는 요령이다.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이정태

페이스북 트위터 인쇄하기 링크복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