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중국의 길을 묻다 – 대안적 문명과 거버넌스』
백영서 엮음

과거 중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경제 영역에 집중해도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기회인가 위기인가를 따져 물었고, 그 대답은 ‘경열정냉(輕熱政冷)’ 즉, 경제는 뜨겁고 정치는 차갑게로 간명하게 제시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중국에 대해 던져야 하는 질문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대답도 그토록 명료하게 제시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연구하며 그리고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절박하고도 절실한 과제이다.
‘새로운 정상’ 만들기와 체제경쟁
이러한 시기에 중국과 한국 12인의 학자의 글을 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가 엮은 『팬데믹 이후 중국의 길을 묻다』는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과연 무엇이 ‘새로운 정상(正常)’이 되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가 ‘정상’으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누리던 많은 것들을 바꾸었다. 이 책은 팬데믹 이전의 ‘정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에서 형성된 ‘새로운 정상’을 만드는 치열한 경쟁에 주목한다.(p.10) 그리고 코로나 방역 과정에서의 중국 권위주의 시스템에 미래와 관련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이 책이 시간적 범위를 중국이 코로나 일차 방역에 성공하였던 2020년 초반까지로 한다는 점은 독자가 감안해야 하는 사항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와 비교해 현재의 상황이 너무나도 판이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성공 자축과 달리 코로나 상황은 계속 악화되었으며, 중국정부는 그 이후 2년여의 시간 동안 “제로 코로나” 정책을 지속하며 인구 천만 이상의 대도시 5개를 봉쇄했다. 가장 최근에 봉쇄된 상하이의 상황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세계 공급망에 가져온 영향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생필품 부족과 긴 시간의 격리로 시민들의 고통 호소와 반발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갖는 의미는 중국 권위주의 정치와 방역 시스템 자체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어느새 중국에 대한 우리의 평가에는 ‘감정’적 요소가 크게 차지하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각 종 설문조사는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악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문화 및 역사 이슈와 관련된 한·중 청년들의 온라인상의 논박과 감정적 충돌은 이미 사회적 우려의 수준에 다다랐다. “반중(反中)”을 넘어서 “혐중(嫌中)”이라는 용어도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익숙한 것이 되었다. 또한 신냉전으로까지 표현되는 최근 국제정세의 변화로 한국은 기존의 전략적 모호의 태도를 더 이상 견지하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때에 중요한 것은 중국에 대한 감정적 요소를 걷어내고,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 책의 한국 저자들은 중국의 권위주의적 코로나 방역 시스템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중국 저자들은 자국 방역시스템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함으로써 중국 방역의 내적 논리와 매커니즘을 독자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중국이 우리에게 무엇이었던가? 근대 이래 최초로 비서구 국가가 세계정상탈환의 목전에까지 부상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세계인들은 중국이 과거 ‘문명국’이었음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것은 소설 데미안의 아프락사스처럼 하나의 세계가 깨지고 다른 세계가 태어나는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세계 진보 진영은 중국을 지적탐구 대상에 제한시키지 않고 운동의 영역에서 수용하고 근대와 동아시아 담론을 재구성했다. 단일한 근대, 인류의 유일한 생존과 번영의 방법론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경쟁하는 근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체제로서의 중국모델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라모의 베이징 컨센서스 제기 이후 중국식의 권위주의적 발전모델은 민주에 기반한 자유주의적 모델과의 경쟁에서 좋은 승점을 기록해왔다.
비(非)서구적인 것, 중국적인 것들로 대체되는 미래에 대한 상상과 기대가 다소 들뜨게 전개될 수 있었던 기저에는 중국의 개혁개방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탄력적 권위주의(resilience authoritarianism)’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자리하고 있다. 강력한 중앙집중적인 통제력과 유능하고 청렴한 현능정치(meritocracy)를 특징으로 하는 중국식의 권위주의는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경제를 성장시키고 중국을 구원투수로 등극시켰다. 중국모델은 낙후한 비민주 국가가 추구해야 할 경제발전 모델로 추앙받았을 뿐만 아니라, 환경 이슈와 같이 기존의 자유민주적 체제가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던 영역에서조차도 그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세계적 위기상황에서 중국식의 권위주의 체제는 다시 한번 실력 발휘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관건적 시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의 도전 요소는 그 이전보다 훨씬 전면적이고 복잡하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재난의 성격과 양상의 변화에 기인한다. 기존의 재난은 일회적이고 자연에 한정된 것으로 인식되는 비일상적 사태였다. 인간은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현대의 재난은 지속적이고 일상적이며 체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재난의 사회적 성격이 강해지면서 재난의 발생에 대한 이해도, 재난의 해법도 그 국가의 총체적 사회·정치 시스템과 긴밀히 연관된다. 이것은 침몰하는 세월호 선박을 구조하지 못했던 것이 단순히 해양구조 시스템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고, 국가 차원의 인식과 정치 시스템의 문제로 확대·심화되는 이유와 같다. 전염병이라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는 더욱 그러하다.
중국 코로나 방역체제의 허와 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중국의 권위주의는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중국의 권위주의 정치시스템은 초기 방역 실패의 원흉으로 비판받았지만, 국가가 총괄하는 강력한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민적 저항과 비판의 자리에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들여앉힘으로써 최총적으로 방역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하남석, 박우, 조영남, 앤드루 류 등 중국 밖에서 중국의 방역을 분석한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중국의 권위주의적 방역 시스템의 효율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권위주의 시스템이 갖는 몰인권적, 비민주적 특징이 갖는 한계를 분명히 지적한다. 조영남 교수는 중국이 ‘전투(방역)’에서는 승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쟁(정치)’에서는 승리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p.99)
이 책의 중국 필진인 셰마오쑹, 야오양, 쉬지린, 친후이, 원톄쥔, 주윈한, 정융녠, 쉬주주 등은 한국에서도 이미 명성이 높은 학자들이다. 셰마오쏭의 ‘신형 거국체제’, 야오양의 중국 혐오라는 세계적 경향에 대한 고찰과 대안 제시, 쉬지린의 동아시아적 문화와 전통에 기반한 방역체제 옹호, 친후이의 방역 제도 경쟁과 민주주의의 결함 비판, 윈테쥔의 중국의 생태문명 건설 강조, 주윈한의 중국을 대표로 하는 비서방 세계 굴기의 미래상 제시, 정용녠의 경제와 사회가 통합된 권위주의 모델의 우월성 주장, 쉬주주의 양성평등의 시각에서의 방역 평가 등, 저자들은 중국의 자기인식 및 팬데믹의 대안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를 제기하였다.
중국의 안과 밖에서 분석과 평가를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초기 코로나 방역에서 중국 권위주의적 시스템이 분명 효율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음은 이 책에서도 결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하남석 교수의 질문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할 것이다. 즉, 중국 방역 모델이 아무리 효과적이라고 해도, 그것의 바람직한 것인가, 혹은 향후 지속 가능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중국모델은 다른 나라들이 쉽게 따라할 수 없는데, “그것은 국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방식을 쉽게 자기 사회에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p.55) 다른 나라들이 중국적 방식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는 국가와 개인에 대한 인식과 가치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팬데믹의 위기 상황은 국가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국가의 개입에 대해 개인이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현실적 고민을 하게 했다. 국가와 개인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할 수 없는 위기 상황에서, 국가 비판의 상투적 담론을 내세우며 진보적인 입장을 고수하거나 국가의 개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협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 개입을 수용 내지 촉구하면서도 그에 정치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민주적이고 대중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상상과 실천이 절실한 시점이다.”(p.27) 백영서 교수는 이상의 관점에서 중국의 거버넌스와 문명담론을 따져묻고자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파트에 갇혀 고통의 괴성을 지르는 상하이 시민들에게서 중국의 거버넌스와 문명담론의 우월성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이 이 책의 후속적 연구가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과 중국연구
쉬지린은 “과거 중국이 저지른 착오는 종종 관념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시대적 변화의 추세와 방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것이었다”(p.205)라고 했다. 굳이 진화론적 입장을 명시하지 않더라도, 그 어떤 것도 변화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다. 중국의 권위주의가 서구 중심의 폐쇄성을 깨뜨리고 새로운 대안을 위한 상상력을 제공하던 시기가 있었다면, 이제 다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새롭게 변화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우리의 중국연구는 비판에만 매몰되는 연구가 아니라, 변화를 발견하고 평가하는 연구이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요청하고 있는 바로 상호 학습과 성찰의 방법론을 통해서 말이다.

인천대학교 중국연구소 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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