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중심이 되는 동아시아를 상상하다
- “동아시아와 시민” 칼럼을 종료하며.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선 인간존엄에 대한 존중과 환대를 실천하는 시민의 힘이 필요
북한 핵 문제, 사드 배치 등 안보 문제를 둘러싼 한-중 사이의 갈등 구조가 여전하고, 한-일관계도 일본 제국주의 시절 강제 징용과 위안부 문제 등 여러 갈등 현안으로 수년째 경색된 상태이다. 일본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동맹 파트너로서 대(對)중국 압박에 적극 참여하면서 중일관계도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이익을 최우선시하고 힘(power)에 좌우되는 국제관계의 특성상, 동아시아 각국의 정부들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국익을 포기하고 힘의 과시를 억제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동아시아는 국익을 위해 갈등과 충돌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고 때로는 상대방에게 힘을 과시하려는 모습도 연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에서 평화란 언제든 손쉽게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 신세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1795년 칸트는 영구평화론을 출간한다. 칸트는 여기서 국제연합(UN)의 이념적 토대를 만들었고, 인간에 대한 보편적 환대 (Hospitality)를 영구 평화의 조건으로 만들었다. 유럽연합(EU)의 이념적 바탕도 여기에 있다. 인간에 대한 보편적 환대와 평화, 그리고 공동번영과 공존을 주창하는 UN이나 EU는 칸트의 이념이 현실화된 실체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동아시아에는 아직 인간의 존엄 그 자체보다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는 애국주의의 정서가 강하고 뿌리 깊다. 불교나 유교와 같은 전통 종교문화 속에 인본주의 가치가 있었다고는 하나 이는 애국이나 호국 전통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에 더해 동아시아의 근대가 제국주의의 침략과 함께 강제로 이뤄져 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근대 시기 동아시아의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는 여러 ‘아시아주의’ 이념들이 확산되었지만 이러한 사상들은 대부분 인간 존엄에 대한 존중과 환대라는 보편적 인식은 배제한 채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시각에 함몰되었고 결국 대부분 일본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이념으로 타락해 갔다.
결국 무엇보다 인간 존엄에 대한 존중과 상호 환대가 보편화된 동아시아 사회가 구축되어야 동아시아에서 영구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간의 존엄에 대한 존중과 환대를 실천하는 시민의 힘이 동아시아 곳곳에서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며 평화를 외치는 러시아 시민의 반전 운동, 억지로 전장에 끌려왔다 포로가 된 러시아 군인들에게 빵을 나눠준 우크라이나 시민의 모습에서 동아시아 시민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동서중국> 웹진의 “동아시아와 시민” 칼럼은 동아시아 시민의 역할 모색을 위한 작은 노력
그동안 <동서중국> 웹진에서 연재된 “동아시아와 시민” 칼럼은 사실 동아시아 시민의 역할을 모색하려는 다양한 문제의식 하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이 칼럼의 첫 필자였던 서광덕 선생님은 과거 동아시아 각국에서 강조된 ‘국민’과 ‘인민’ 개념은 국가(정부)에 의해 양성되는 수동적 존재이며 이제 21세기 동아시아는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로서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주체적 개인 즉 ‘시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필자였던 김성민 선생님은 동아시아 국가와 사회 사이의 다양한 결사체들이 구성되어 동아시아 시민사회가 만들어지길 염원했고, 세 번째 필자였던 김동규 선생님은 동아시아 시민사회가 연대하여 동아시아 국가 간 연대를 통한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동아시아 헌정민주주의 구상을 제기했다.
동아시아와 시민” 칼럼의 네 번째 필자였던 배경한 선생님은 역사적 관점에서 한중관계의 ‘호조(互助)’와 ‘길항(拮抗)’의 양면 구조를 볼 것을 제안하며 특히 호조의 경험을 소중히 할 것을 부탁한다. 다섯 번째 필자였던 박정심 선생님은 민족적이면서도 혈통적 민족 담론을 넘어섰던 사상가 신채호의 국제연대의 정신을 되살릴 것을 강조했고, 여섯 번째 필자였던 안재연 선생님은 최부의 표해록 등 여러 ‘아시아의 표류기’에서 표류한 이방인을 도우려는 아시아인들의 동아시아 시민 연대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동아시아와 시민” 칼럼의 일곱 번째 필자였던 김성민 선생님은 한중 시민사회 협력에 관한 제언으로 보건‧위생 분야에서의 협력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안했고 여덟 번째 필자였던 서용태 선생님은 칭다오 맥주와 아사히 맥주 그리고 우리 맥주의 깊은 역사적 연관성을 논하면서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동아시아 시민의 상(像)을 상상하자고 제안한다. 아홉 번째 필자였던 김수한 선생님은 중국과 대만의 졉경지이자 양안 충돌의 역사적 현장인 금문도(金門島)가 동아시아 평화의 상징으로 변해가고자 하는 노력을 보고한다.
그래서 열 번째 필자였던 본인은 미중 경쟁의 시대에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동아시아 협력을 구현하는데 시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열한 번째 필자였던 전성현 선생님은 동아시아 시민성의 구현은 역사적 반성에서 출발하며 동아시아 대학생 평화인권캠프와 같은 실천적 노력을 계속하자고 제안한다. 열두 번째 필자였던 장정아 선생님은 홍콩에서 자유주의와 시민사회 역할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전하면서 이제 홍콩의 민주 논쟁을 통해 동아시아 시민성이 시험대에 올랐음을 보고하고 있다.
학술지 <동아시아와 시민> 창간은 시민 중심의 새로운 동아시아 구현을 위해 매진하기 위한 것
이제 동서대 동아시아연구원 중국연구센터는 다음 호부터 웹진 <동서중국> 의 ‘동아시아와 시민’ 칼럼 연재를 종료하고자 한다. 대신 웹진 칼럼의 취지를 그대로 이어받아 4월30일자로 학술지 <동아시아와 시민>을 창간하였다.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동아시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담론에 대한 제시와 정책적 논의가 좀 더 무게감 있게 제시돼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통합이라는 거창한 목표에 대한 호오와는 상관없이 각종 재해 및 환경 문제에 대한 대처나 방역 협력, 교통이나 통신 및 에너지 협력 같은 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여러 문제에서 동아시아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본 학술지는 시민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동아시아를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를 위해 동서대 동아시아연구원 중국연구센터는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과 공동으로 <동아시아와 시민>을 창간하였다. 민주시민교육원 나락한알은 시민들이 함께 놀고 배우며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하도록 하여 진정으로 ‘시민’을 성장시키고자 하는 교육 단체인 만큼 두 곳이 힘을 합친 <동아시아와 시민> 학술지는 새로운 동아시아를 만들기 위한 혁신적인 이론과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좋은 플랫폼이 되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동서중국> 웹진의 ‘동아시아와 시민’ 칼럼을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학술지 <동아시아와 시민>에 대한 관심도 깊이 가져주시고 지속적인 참여와 응원을 부탁드린다.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중국연구센터 소장 이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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