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의 역사와 문화

보이차(普洱茶)는 어떤 차인가

명차(名茶)로 불리는 많은 차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보이차의 명성은 대단하다. 최근에는 건강차와 다이어트차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보이차는 다른 차들과 어떻게 다른 차일까. 사람들은 보이차의 어떤 점에 열광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보이차는 원차(圓茶)인 칠자병차(七子餠茶)이다. 이는 원형의 보이차를 7개씩 묶은 단위로 판매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원형의 보이차는 직경 20㎝, 중심부 두께 2.5㎝, 주변부 두께 1㎝의 규격으로 생산되며 한 개의 무게는 357.15g이다. 7개를 1통(筒)으로 하고 12통을 1건(件) 30㎏으로 공급한다.
보이차는 흑차(黑茶)로 분류하는데 흑차는 후발효차(後醱酵茶)이다. 후발효차인 보이차는 공정의 마지막 단계에 세균 발효과정을 거치는 매우 특이한 차이다. 속칭 ‘곰팡이차’라고 불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종류의 차에는 세균발효 과정이 없다. 따라서 보이차가 가지는 독특한 풍미와 작용은 세균발효 과정의 결과라고 보면 된다.
차나무 잎을 기본 원료로 한 음료인 차는 발효 정도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차의 발효는 기본적으로 세균에 의한 것이 아니고 산화효소에 의한 산화를 의미한다. 그 발효(산화) 정도에 따라 불발효차(不醱酵茶), 반발효차(半醱酵茶, 10~65%), 발효차(醱酵茶, 85% 이상), 후발효차로 구분한다. 녹차가 불발효차이고, 백차와 우롱차가 반발효차, 홍차가 발효차, 황차와 흑차가 후발효차이다. 황차는 후발효의 퇴적과정에서 증기와 열에 의해 엽록소가 파괴되어 황색을 띄기 때문에 붙인 명칭이고 이 과정은 비효소성 발효라고 한다.
흑차는 dark tea 혹은 post-fermented tea라고 번역되고 Puer tea(보이차)로 통칭되기도 한다. 글자의 의미 그대로 black tea라고 하지 않는 까닭은 서양에서 black tea는 홍차를 부르는 말로 먼저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찻잎의 색을 기준으로 하였기 때문에 발효되어 변색된 홍차의 찻잎이 검다고 하여서 black tea라고 하였다. 당시는 흑차가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동양에서는 우러나온 차물의 색을 기준으로 하여 붉은 찻물을 따라 홍차라고 불렀다. 서로 부르는 기준이 달라서 생긴 호칭의 차이이다.
흑차를 대표하는 차인 보이차는 색과 맛이 매우 독특하다. 증제녹차와 같이 증기로 열처리하여 산화효소를 제거시킨 후 곰팡이류가 번식하기 적당한 습도와 온도에서 세균에 의한 효소의 작용을 이용해 완성한다. 이로써 잎의 색과 모양이 많이 변형되고 차의 떫은맛과 풋냄새가 없어지며 세균발효를 통한 독특한 풍미가 생긴다. 찻물도 암적색으로 마치 녹물이 우러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보이차 알고 마시기

보이차가 가진 최고의 장점은 녹차 등 다른 차들이 가진 단점을 보완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차는 빈속에 마시거나 소화기능이 약한 사람에게는 위장 장애를 일으킨다. 차고 강한 성질 때문에 소화기에 부담을 주는 것이다. 이를 피하게 하기 위해 식전이나 빈속에 마시지 말라고 한다. 보이차는 세균발효과정을 통해 이러한 성질이 약화된 차이다. 따라서 마시는데 있어서 위장 장애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보이차는 오래전부터 승려들이 선호하는 차였다. 한국에서 부산이 보이차 공급의 메카 역할을 한 것도 지역문화로 뿌리 깊은 불교와 승려들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차의 차고 강한 성질을 보완했다고 해서 보이차가 다른 차에 비해 건강에 더 좋은가 하는 문제는 재고의 여지가 많다. 위장장애 없이 마실 수 있는 장점을 가진 것만으로 차의 여러 기능성(영향성, 기호성, 체조절성)에서 모두 우위를 점할 수는 없다. 보이차를 녹차, 우롱차, 홍차 등과 비교할 때 보이차의 기능성은 높지 않다. 차의 기능성을 부여하는 여러 성분들의 함량이 보이차에는 전반적으로 낮게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균발효과정을 거치면서 보이차에는 많은 영양소의 함량이 상실된다.
차에 높은 기능성을 부여하는 까닭은 카페인, 카데킨, 데아닌, 비타민 등의 성분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 중 차 성분의 최대 장점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폴리페놀의 주성분인 카테킨류이다. 그런데 보이차에는 카데킨류의 함량이 절대적으로 낮다. 이는 보이차의 상당한 단점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신 보이차에는 갈산의 함량이 높은데 그렇다고 카테킨류의 상실을 상쇄할 정도는 아니다. 이들 성분은 체중감소, 성인병예방, 항암효과 등의 유사한 기능을 한다.
그렇다고 차를 두고 성분 함량의 차이에 따라 크게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약을 찾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차를 마시는 즐거움은 다양하므로 이를 즐길 일이다. 카페인 성분도 상대적으로 낮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성질을 보유했다는 사실로도 보이차는 충분한 장점을 가진 차이다.
일반적으로 보이차는 기름진 광동음식과 잘 어울린다고 평가받는다. 이것 또한 지방분해나 콜레스테롤 감소 등의 체조절성을 우선 기준으로 한 것은 아니다. 보이차가 가진 강한 풍미와 높은 찻물의 온도가 기름진 음식과 어울린다는 맛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색이 진하고 맛이 강한 보이차는 쓴맛과 떫은맛을 내는 카데킨의 함량이 적기 때문에 끓는 물로 그대로 우려낸다. 따라서 다른 차에 비해 더 뜨겁게 마시는 것을 즐긴다. 강한 맛과 높은 물의 온도가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입안을 깨끗하게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보이차가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남방에서 소비되고 있었던 것도 광동에서 보이차를 선호한 이유의 하나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보이차는 강하고 독특한 맛을 보유한 만큼 호불호가 분명한 차이기도 하지만 이를 애음하는 이들은 최고의 차라는 칭찬을 마다하지 않는다.

생차(生茶, 혹은 청병靑餠)와 숙차(熟茶, 혹은 숙병熟餠)의 문제

사진출처:두바이
보이차를 개성이 강한 차라고 하는 까닭은 세균발효를 거친다는 공정의 특이함도 있고 그로 인한 특징이 여타의 차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개의 차들이 그 해 생산해서 그 해의 햇차를 소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식인데 반해 보이차는 오래 묶을수록 좋은 차가 된다. 여타의 차들은 시간에 따라 품질이 저하되고 변질에 이르게 되어 결국은 마시지 못하게 된다. ‘아끼다가 똥 된다’는 시쳇말을 여기에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대개의 차들은 비싸고 귀할수록 바로 개봉해서 빨리 마시는 것이 그 차의 진면목을 즐길 수 있는 방식이다. 반면 보이차는 오래된 것일수록 가격이 오르고 맛이 더해진다.

오래될수록 가격이 오르는 것은 위스키의 가격이 숙성기간에 따라 높아지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10년의 숙성기간을 거친 보이차보다 20년을 거친 보이차가 높은 가격을 형성한다. 30년에 이르는 차는 부르는 게 곧 값이라는 말이 있다. 현실적으로 구하기 어렵다고 보는 편이 맞다.
다른 차들이 도저히 형성할 수 없는 높은 가격대로 유통되고 판매되는 보이차의 특성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재테크를 목적으로 보이차를 구매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했다. 고수익은 고위험을 전제로 하듯이 고가의 보이차 구매는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다. 숙성기간은 물론 그것이 정품이라는 증거를 소비자가 확인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에 이미 중국의 운남성(雲南省) 지방정부가 유통되는 고가의 보이차 가운데 70%가 정품이 아니므로 소비자들에게 주의할 것을 권고했을 정도였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람들에 의한 폐해가 보이차의 품질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비위생적인 가짜 보이차가 고가의 보이차인 양 판매되기도 하였고 저가의 보이차가 고가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보이차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지만 급증하는 수요를 전통방식으로 공급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도 현실이었다. 생차과 숙차의 구분이 생기게 된 것은 이러한 현실의 결과였다.
본래 전통적 방식에 따르면 보이차는 운남대엽종을 사용해 증제방식으로 차잎의 산화를 정지시킨 후 증압으로 형태를 만들다. 이 상태가 지금의 생차(청병)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것을 장기간에 걸쳐 보관하면서 서서히 세균발효시켜 완성된 것이 보이차였다. 이것이 숙차(숙병)가 되는 것이므로 전통 방식에서는 생차와 숙차의 구별이란 게 없었다.
그런데 오래 묶은 보이차를 찾는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보이차를 공급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엉터리로 숙성시킨 것을 오래된 보이차로 둔갑시켜 비싸게 파는 경우가 빈번하여 보이차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지경이 되었다. 따라서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몇 년 이상이 걸리는 후발효의 과정을 속성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을 개발하였다. 이 방식으로 만든 것이 숙차, 혹은 숙병이라고 불리는 보이차이고 현재 보이차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차는 여전히 제작시기, 즉 숙성기간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하지 않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제조공정이나 도매 유통이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고 있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난감한 부분이 있다. 최근 네 자리 숫자를 통해 상품의 제작방식 연도와 사용된 차의 혼합 정도와 등급, 제작 장소 등을 표시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앞의 두 자리는 그 차의 제품이 처음 탄생한 연도, 즉 그 해의 레시피로 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구입한 차의 생산연도와는 상관이 없다. 따라서 보이차는 지나치게 고가를 선호하기 보다는 대중적인 정품을 고르는 것이 현명하다. 고가일수록 속아서 비싸게 구입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이차의 고향 운남(雲南)

전(滇) 또는 운(雲)으로 간칭되는 운남은 차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역으로 유명하고 차나무의 원산지로도 지목된다. 세계적으로 차나무의 품종은 37개 종(種)과 3개 변종(變種)이 있다. 그중 운남에는 무려 31개 종과 2개 변종이 분포되어 있다. 이는 세계 품종의 83%를 점하는 것이다. 게다가 운남에서만 보유하고 있는 품종이 24개이고 변종이 1개로, 이는 62.5%에 해당한다. 운남이 차나무의 보고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천혜의 환경에서 보이차가 만들어졌다.
보이차는 운남성(雲南省) 서상판납(西雙版納, 시슈앙반나), 사모(思茅, 쓰마오) 등지에서 주로 생산된다. 보이차라는 명칭은 생산된 지명을 따서 붙인 것이 아니라 그 지역 차의 집산지명을 따라 붙인 것이다. 옛날 서쌍판납 등지는 보이부(普洱府)의 관할지역이었고 그 인근 지역인 당시 전남(滇南) 등지에서 생산된 차는 모두 보이부에 집산되었다. 보이부를 통해 이 지역에서 생산된 차가 공급되었으므로 붙여진 명칭이다. 최근에는 운남성 뿐 아니라 사천과 호남, 호북 등지에서도 보이차를 생산한다.

중국인도 몰랐던 보이차의 명성

운남지역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차를 즐겨 마셔왔지만 중국 기록에 보이기 시작한 것은 당(唐)나라에 이르러서였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차잎을 채취하여 산초, 생강 등을 넣고 끓여 마신다는 기록이 당나라 기록인 번작(樊綽)의 «만서(蠻書)»에 남아있다. 그럼에도 그 후로 오랫동안 중국인들이 이 지역의 차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 많은 차 생산지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차를 마시는 방법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송시대 중국인들의 차 마시는 방법은 가루차를 사용하는 것이 주류였다. 중국인들이 후발효차에 관심을 보인 시점은 차를 마시는 방법이 변화하여 우려마시는 포차법(泡茶法)이 주류가 된 시점이었다. 가루차가 주류였던 시대는 녹차의 시대였으므로 녹차 이외의 차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외진 지역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중국 내에서 잎차를 우려 찻물만 마시는 쪽으로 변화하고 발효차의 제조방식이 개발되면서 점차 다양한 차와 그 맛에 관심이 높아졌다. 이러한 기호의 변화가 있으면서 운남 보이차의 명성도 외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청대에 이르러 황실차로 진공되면서 그 명성이 천하를 호령하였다. 건륭제가 애호하였고 서태후가 황금 테이블에 백옥으로 만든 다완을 놓고 여름에는 용정차와 동정 벽라춘을 즐기고 겨울에는 보이차를 마셨다는 일화도 보이차에 대한 명성을 높였다.

글 ㅣ 동서대학교 중국연구센터 소장 신정승
사진 ㅣ 동서대학교 중국연구센터 소장 신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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