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새로운 협력 모델, 부산과 상하이가 만들자.

한-중-일 3국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경제적으로만 봐도 한-중-일은 서로에게 가장 중요한 교역상대국들이다. 한-중 FTA는 이미 체결되었고 한-중-일 FTA도 공식협상이 진행 중일 정도로 한-중-일 시장통합도 멀지 않았다. 동아시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한-중-일 3국의 외교안보적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실제로 한-중-일 3국은 동아시아 3국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왔다. 2008년부터는 이러한 3국 협력을 위한 ‘한중일 3국 협력 사무국(TCS)’이 서울에 설치되어 활발한 활동을 해왔고 한중일 정상회의도 연례적으로 개최되어 3국 협력을 위한 많은 합의를 도출한 바 있다.
그럼에도 한국, 중국, 일본의 동아시아 3국은 매우 미묘한 관계이다. 서로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화합하기보다는 갈등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드배치를 둘러싼 한-중 간의 갈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은 북핵 문제로 인한 한국의 위기감을 잘 알고 있었고 한국은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민감함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양국은 타협하기보다는 대립했다. 사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과 중국 국내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냉전적 사고이다. 한-일, 중-일 사이의 역사문제, 영토문제 등의 갈등도 오래된 사안들이다. 가깝게는 19세기 말 이후 전쟁과 침탈 등으로 형성된 동아시아 3국 사이의 오래된 원한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데다가 멀게는 조공관계와 사대주의로 맺어진 전근대적 우월감과 피해의식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의 갈등은 과거의 불행한 역사로부터 비롯되었고 여전히 상대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기는 현실로부터 심화된다.
그렇다면, 한-중-일 3국의 시민들은 언제까지 이러한 적대적 감정을 품고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에서 현재까지 뿌리깊은 3국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은 무엇인가? 단순히 한-중-일 3국 협력이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실용적 접근’ 혹은 ‘도구적 접근’만으로 한-중-일 3국 사람들 마음속의 깊은 갈등까지 근본적으로 해소하고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누구나 예상하듯이 당장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중-일 3국 갈등을 뛰어넘어 인식을 공유하며 3국 사이의 동아시아 협력 모델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그 어떤 역사적 시작점을 새롭게 찾아내야 한다. 필자는 그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하여 세 가지 측면을 강조하여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동아시아 전체를 하나로 인식하여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사고(思考) 체계를 형성해나가야 한다. 이를테면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따라서 이러한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는 초(超)국가적이어야 하며 탈(脫)민족주의적 사고이어야 한다. 동아시아는 패권이나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곳이 되어서도 안 되며 공동체 내 구성원들의 배타적 이익을 추구하는 폐쇄적 공동체나 반(反)서구주의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는 역내의 평등과 공존공영을 지향하고 열린 지역공동체로서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어야 하며 다문화 사회로서 다양성과 관용이 넘치는 공동체적 사고이어야 한다.1)
둘째, 이러한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는 더 이상 소수 지식인이나 엘리트의 담론이 아니라 ‘시민’의 담론이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는 시민적 삶을 해석하는 매개가 되어야 한다. 그 동안 비판적 지성이라 불리며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온 지식인들이 많은 동아시아 공동체 담론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동아시아공동체 담론은 시민들의 생활과는 유리된 아카데미즘의 영역에서 주로 논쟁과 논의가 이루어졌기에 ‘선언’ 이상의 의미를 갖기가 어려웠다. 더욱이 그들의 동아시아 공동체 담론은 동아시아 지식인 그룹 내부에서만 맴돌았을 뿐 실상 동아시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함으로써 동아시아 시민의 사상과 담론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제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는 소수 지식인이나 엘리트가 아니라 시민의 삶을 해석하는 매개가 됨으로써 시민의 개입을 가져와야 하고 결국 시민의 담론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셋째, 동아시아 3국은 ‘시민의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를 ‘실천’하는 경험을 축적해 나가야 한다. 즉,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를 만들어내는 프로젝트를 동시 다발적으로 수행해야한다. 예컨대, 한중일 3국의 역사학자들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집필하여 동시에 출판한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교재를 만들었던 경험이나 한중일 3국의 대학이 공동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는 ‘캠퍼스 아시아(CAMPUS Asia)’ 프로그램 같은 경험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쌓은 한중일 3국 시민들의 신뢰라는 자산이다. ‘시민의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를 구현해내는 이러한 실천 과정은 서로의 차이를 좁혀가는 것이기에 힘들겠지만, 신뢰라는 공동의 자산을 만들어가는 무척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요약하자면 동아시아 3국 시민들이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를 시민 스스로 공유하며 이를 실천하는 경험을 쌓아나감으로써 상호 신뢰라는 공동의 자산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 누가 이러한 과정에 앞장설 것인가? 필자는 부산과 상하이, 후쿠오카와 같은 연해에 위치한 동아시아 국제도시들의 시민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연해의 동아시아 국제도시 시민들이야말로 민족국가 중심에서 초월하여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를 형성해낼 수 있는 개방성과 포용성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시기부터 아시아의 무역항이었던 후쿠오카는 일본의 주요 도시 중에 한반도나 중국 등의 동아시아 지역에 가장 가까운 도시로 부산과는 20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부산은 조선시대 때 왜관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 부로 승격된 대표적인 도시였기에 일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면서 국제도시로 성장한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부산과 후쿠오카는 이미 활발한 민간교류를 추진해왔다. 예컨대 부산과 후쿠오카 사이의 민간포럼으로 많은 관련 정책을 제언하고 있는 부산-후쿠오카 포럼은 이미 13년째를 맞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부산-후쿠오카 사이에 '경제협력 사무소'가 설치되고 '부산-후쿠오카 비즈니스 CEO 포럼' 등이 운영되고 있으며 사회교과서 부교재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차세대 시민들인 대학생간 대화가 이루어지고 소재 대학교 사이의 컨소시엄이 체결되었다. 이러한 활발한 민간교류는 한-일 관계 악화의 순간에도 양국 사이의 인적 네트워크를 가동시켜 양국 관계 개선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부산과 상하이의 관계는 어떤가? 알다시피 상하이는 이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동아시아의 가장 큰 국제도시였으나 중국의 개혁개방이 심화된 1990년대 이후에야 다시 크게 성장한 도시이다. 1993년 8월 한중수교 1주년을 즈음하여 상하이는 부산과 자매도시 결연을 체결하고 교류를 시작하였으니 올해가 부산-상하이 간 자매결연 25주년이 된다. 부산으로서는 국내 광역도시 가운데 가장 먼저 상하이와 자매도시 결연을 하고 다방면에서 교류를 해왔지만 양 도시 사이에 실효성 있는 성과는 미흡했던 것은 이미 오래전에 지적된 바 있다.2) 또한 이제 상하이의 위상이 동아시아를 넘어 뉴욕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수준의 국제도시로 성장해서 부산과의 격차가 크게 커졌기 때문에 향후 양 도시 간의 실질적인 교류협력 활성화도 낙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지방정부 차원에서 상하이는 부산과의 교류가 위상이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상하이는 인구 3000만이 넘는 세계 3위의 도시이고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오히려 능가하는 경제력을 갖고 있는 중국 제1의 경제도시이다. 이에 비해 부산은 인구가 350만에도 미치지 못하며 한국의 수도 서울의 경제력에 비하면 그 1/4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러나 부산과 상하이 사이의 교류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단순한 위상 차이 때문이 아니라 교류가 관주도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정작 자매결연 20주년이 되던 2013년 직전까지도 부산과 상하이가 자매도시 관계라는 사실에 대해 부산 시민의 80% 가까이가 모르고 있었고 부산과 상하이가 교류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산 시민의 84% 정도가 모르고 있었다. 부산시민들은 그 원인으로 ‘홍보부족’, ‘행정교류에 편중’, ‘다채롭지 못한 프로그램’, ‘시민참여 기회의 적음’, ‘형식적인 행사’ 등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으니 결국 부산과 상하이 사이의 교류는 시민 주도가 아니라 관주도적으로 그리고 형식적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3)
2016 제1회 부산-상하이 협력포럼 <사진출처: 동서대 중국연구센터>
그렇다면 이제 2018년 8월이면 맞이하는 부산-상하이 자매도시 결연 25주년을 기점으로 하여 부산-상하이 시민들 사이의 다양한 교류를 활성화시켜보자. 때마침 남북한 평화정착을 위한 발걸음이 속도를 내고 있는 이 마당에 상하이의 청년들이 부산의 청년들과 함께 부산에서 판문점까지 걸어가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합창하면 어떨까? 후쿠오카의 청년들도 가세하면 더 좋을 것이고 북한 신의주나 나선시의 청년들도 판문점에서 만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부산의 청년들이 상하이로 가서 일대일로의 노선을 따라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상하이의 청년들과 함께 가면서 실크로드 문화교류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산과 상하이의 시민들이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내용으로 민간교류를 활성화한다면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를 구현하는 또 다른 실천 경험들이 될 것이 확실하다.
필자가 속한 동서대 중국연구센터는 2016년 가을에 부산에서 퉁지대(동제대) 중국전략연구원과 함께 부산-상하이 협력포럼을 처음으로 개최했고, 2017년 작년에는 상하이에서 제2회 부산-상하이 협력포럼 개최를 지속해냈다. 사드 배치 문제로 한중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던 시점이었지만 두 학교가 부산과 상하이 협력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포럼 개최를 관철시킴으로써 부산과 상하이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올해 부산에서 열리는 제3회 부산-상하이 협력포럼 역시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부산-상하이 자매도시 결연 25주년의 의미를 더욱 빛내고 시민들이 동아시아 공동체적 사고를 품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지를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 1) 박승우. 2011. “동아시아 공동체 담론 리뷰” 『아시아리뷰』 제1권 제1호. pp.94-96
  • 2) 장정재, 2013. “부산-상하이 교류 20년, 성과와 향후 과제”, 『BDI 정책포커스』 215(2013년 8월). pp2-4.
  • 3) 장정재, 2014. “부산광역시의 대중국 교류 현황과 향후 과제”, 『INChinaBrief』 vol.275.(2014.9.14.), pp.13-14.

글 ㅣ 동서대 동아시아학과/중국연구센터 이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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